이달의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한글을 수호하여 

민족정신을 되살린

조선어학회 회원들

이달의 독립운동가<BR />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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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지영(張志暎)                                  김윤경(金允經)                                        권덕규(權悳奎)

1887~1976                                        1894~1969                                              1891~1950

서울건국훈장 애국장(1990)              경기도 광주건국훈장 애국장(1990)        경기도 김포건국훈장 애국장(2019)


일제강점기 한글 연구로 민족정신을 일깨우다

1908년 주시경이 조직한 국어연구학회를 계승한 조선어연구회는 1921년 우리말·글 사용에 대한 일제의 억압에 맞서 한글을 지키고 연구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조직을 개편한 후에도 전국의 우리말 어휘 수집을 지속하는 한편, 「한글 맞춤법 통일안」 등을 제정하고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힘썼다.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 시기에도 지속된 조선어학회의 활동과 한글 연구는 한글에 민족정신이 담겨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전개한 뜻깊은 독립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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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 10. 29.)(좌) / 조선말 큰사전 원고(보물 제2086호, 1929~1942)(우)


한글 맞춤법 연구와 보급에 앞장서다                  

장지영·김윤경·권덕규는 1921년 12월 창립된 조선어연구회에서 조선총독부의 일방적인 맞춤법 규정에 맞서 한국인 독자적인 한글 맞춤법 제정에 힘썼다. 이들은 조선어사전편찬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수차례의 토의 끝에 한글 문법과 성음(聲音)을 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 원안(原案)을 제정하는 등 한글 맞춤법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들은 맞춤법 제정 뿐 아니라 보급에도 앞장섰다. 장지영은 1928년 조선일보의 문맹퇴치운동을 주관하여 농촌지역 한글 보급을 주도하고, 김윤경·권덕규는 1931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조선어강습회에서 한글관련 전국 순회강연을 하는 등 한글 보급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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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조선어 강습회」, 『동아일보』(1931. 7. 25.)_국사편찬위원회 제공(좌) / 조선어학회 사건 수난동지회(1946. 6. 12.)(우)


한글 연구 성과를 사전으로 집대성하다

1931년 조선어연구회를 조선어학회로 개편한 회원들은 한글 사전 편찬에 박차를 가하였다. 장지영·김윤경·권덕규는 맞춤법 제정위원과 표준어 사정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완성하고 1935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과 1940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차례로 확정하는 등 사전 편찬의 기초 작업을 마쳤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힘쓰던 중 1942년 일제가 한글 연구 탄압을 목적으로 일으킨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사전 편찬은 잠정 중단되었다. 하지만 광복 후 재건된 조선어학회가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이어나가면서 1957년 『조선말 큰사전』은 완간(完刊)될 수 있었다. 일제 탄압에 맞서 한글 지키기에 앞장선 세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90년 장지영·김윤경에게 애국장, 2019년 권덕규에게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사정(査正) 조사하거나 심사하여 결정

**조선어학회 사건 일제가 1942년 10월 치안유지법을 적용해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조선어학회 회원 30여 명을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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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원고(보물 제2085호, 1914)_국립한글박물관 제공(좌) / 『한글 원본』(국가등록문화재 제484-2호, 1930. 7. 10.)_조선일보 사료관 소장(우)


민족혼이 담겨 있는 우리말과 글이 

없어지게 된다면, 우리의 자주독립은 

영영 소망이 없게 될 것이다.

김윤경이 집필한『조선문자급어학사(朝鮮文字及語學史)』 중에서(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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