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발자취

유관순의 스승 

김란사의 일생

〈네가 선택한 삶이 아름답기를〉

독립의 발자취<BR />

글 편집실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김란사를 조명하는 특별전 〈네가 선택한 삶이 아름답기를〉이 서울교육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화학당에서 유관순 등 여러 학생에게 독립의식을 심어주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교육자 김란사(金蘭史)의 생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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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로 재현한 김란사         


독립운동가 김란사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세요 

김란사는 150년 전 부유하고 안정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 안락함을 마다하고 역사의 소용돌이로 들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살아간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신교육에 눈을 떠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문학사를 취득하고, 모교인 이화학당에서 학생들에게 독립의식을 심어주는 등 여성교육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으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이번 테마전 기획 취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번 김란사 특별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김란사의 생애가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리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술 작품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는 뜻깊은 일에 26명의 작가들이 함께해주었습니다. 회화, 조소, 그라피티, 사진, 모형, 보석, 모바일 작품 등 작가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고, 그것을 본 관람객들이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알아가며 책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작가들이 작품에 참여한 과정이 궁금한데요

이번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지킨 독립운동가들을 왜 지금에 와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눴습니다. 이어 김란사 지사의 일생을 충분히 소화하고 이해한 뒤에 새롭고 과감한 시선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작품을 구상하고 창작하는 지난 1년의 시간이 모두 작가들의 재능 기부로 이뤄졌으며,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위대한 여성독립운동가를 지상 위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김란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작품에 임해준 작가들의 노력과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전시 작품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전시 작품 중 박미화 작가의 작품 〈김란사〉는 민화풍의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작품에는 깃털이 달린 붉은 서양 모자, 미국 유학시절에 아끼던 소품, 한국 최초의 여학사로서 썼던 학사모, 유학시절 공부했던 책 등이 표현되어 있어 의미가 있습니다. 박미화 작가는 김란사의 일생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책가도(冊架圖)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책가도는 책가(책장)를 배경으로 책·문방구류·장식품 등을 그려 넣은 그림입니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독서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각 책장 속에 김란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그려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전시는 2021년 8월부터 시작해 2022년 3월 30일까지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조국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생애와 활동을 알리고, 전시관 외부에 조성된 〈독립운동가의 길〉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보다 많은 국민이 역사적 의미를 지닌 독립운동가를 만나는 계기를 마련하고, 진정한 나라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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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화 작가의 〈김란사〉


기 간 : 2022. 3. 30. 까지

장 소 : 정독도서관(서울교육박물관)

문 의 : 02-2011-5782




배움을 갈망한 신여성

김 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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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사(좌) / 게이오대학 대조선인 일본 유학생 친목회 사진(1886)(우)


지식만이 살 길이다

1872년 평양 안주 출신의 김란사는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장하였다. 언제나 정신이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김란사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는 집념의 소유자였다.      

1893년 21세에 경무청에서 일하는 하상기와 결혼하고 나서 1년 뒤 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청일전쟁 등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하던 때에 위태로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를 실천하고자 이화학당을 찾아가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만다. 당시 학당의 규칙대로라면 결혼한 여성은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당장을 찾아가 자신 또한 조선의 여성이니 당연히 입학할 자격이 있다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자신은 다른 학생들과 달리 학비를 부담할 것이며 귀부인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바라지 않으며 어린 학생들과 같은 곳에서 생활할 것을 다짐한 뒤 입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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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교회 파이프 오르간 설치 기념 예배 후


여성교육 발전에 힘쓰다

이후 1895년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1년간 유학한 뒤, 1897년에는 더 넓은 세상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워싱턴에 있는 하워드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오하이오주에 있는 웨슬리안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였다. 김란사가 계속 공부를 하려는 이유는 분명하였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넘보는 우리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대적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해서였다.       

190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다수의 여학교를 세우고 여성교육 발전에 힘썼다. 1907년에는 모교인 이화학당 교사로 지내면서 이문회를 조직하여 수많은 제자의 민족의식을 드높이는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후 김란사를 따르던 학생들은 3·1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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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프 오르간 모금을 위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임무 수행 중 순국하다

고종의 신임을 얻은 김란사는 1919년 1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참석해 ‘미국과 조선이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 받으면 서로 도와준다’는 내용이 담긴 외교 문서를 외국 대표들에게 전하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1월 22일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이 계획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독립선언문을 읽는 사건을 계기로 파리강화회의 참석이 비밀리에 추진되었다.     

김란사는 3·1운동이 일어나고 며칠 뒤 파리로 가기 전 중국 베이징에서 비밀결사대와 만나기로 하고 베이징으로 떠났다. 그리고 3월 10일 베이징 교포가 마련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김란사는 순국한 지 70여 년 만에 공적을 인정받아 1995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고, 2018년에는 국립현충원에 위패가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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