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애국가 다시금 논의할 때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BR />

글 이계형(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우리나라에서 끝나지 않은 논쟁 중 하나가 애국가이다. 누가 작사하였는지 불명확하고, 친일파가 작곡한 곡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말도 많다. 애국가는 정식 국가(國歌)는 아니지만, 태극기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이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식적인 국가 행사에서는 반드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도 애국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호와 국기는 전근대 시기와 연결되어 있다. 근대국가로 탈바꿈해 가던 시기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근대화 과정이 왜곡되면서 빚어진 결과다. 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독립운동 당시 전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바뀌었고, 국기는 여전히 태극기가 내걸렸다. 광복 후 1948년 8월 자주독립 국가가 탄생하면서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국기는 ‘태극기’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애국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에는 국민 정서와 역사 또는 가치관 등이 담겨 조국(祖國)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 애국심, 국민의 결속과 용기를 고취한다. 그렇다면 세계를 대표하는 나라들의 국가는 어떤지 살펴보자. 혁명을 거쳐 근대국가로 변모한 프랑스의 국가는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라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혁명 당시 파리의 튈르리 궁전을 습격하여 프랑스 왕정을 끝낸 마르세유 군대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영국은 여전히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기에 ‘God Save the Queen’이라는 군주를 축원하는 내용의 국가를 사용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은 색다르다. 일본은 패전 후 국가가 없어졌는데 1999년에 ‘기미가요(君が代)’를 다시 국가로 정했다. 이는 천황과 제국주의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여러 논란과 반대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국가로 자리 잡았다. 독일 역시 패전 후 국가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Deutschland über Alles)’이라는 의미의 독일 국가는 1952년 1절과 2절을 부르지 않는 조건으로 ‘독일인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어떠한가?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 Spangled Banner)’는 미국의 국가는 국기이면서 미국 정신의 상징인 ‘성조기’를 강조한다. 이는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바이킹 후예들이 승리의 노래로 불렀다고 하는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to anacreon in heaven)’라는 곡조에 침략이 아닌 방어의 미덕을 찬양하는 노랫말을 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습적으로 ‘애국가’를 국가라 부른다. 이를 풀어쓰자면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는 뜻이다. 애국가는 1894년 이후 만들어진 창가 제목 중 하나였다. 1896년 무렵에는 그 수가 10여 종이나 됐고, 『독립신문』에 그와 관련한 가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다만 어떤 곡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뒤 고종 재위 40주년을 맞아 1902년 왕립군악대 교사였던 독일인 에케르트가 작곡한 애국가가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러 애국가가 학교에서 불리자 1904년에 학부가 나서서 그것이 유일한 ‘국가’라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하였고, 이후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합창하곤 하였다. 당시 애국가는 “샹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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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1878~1938)(좌) /  윤치호(1866~1945)(우)


애국가에 대한 논쟁

지금의 애국가는 작사자가 ‘윤치호냐, 안창호냐’를 두고 논쟁이 격렬하다.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해 현재 작사자 미상이다. 그런데도 이를 굳이 정리하자면 대한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 10월 30일자 『대한매일신보』에 ‘무궁화가’라는 제목의 가사가 실렸는데, 첫 구절은 성자신손오백년(聖子神孫五百年)으로 시작한다. 후렴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오늘날과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하는 애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곡조에 맞춰 불렸다.          

이는 경술국치 이후 애국가로 지칭되었고, 국가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단체의 독립운동가들이 부르곤 하였다. 그러다 안익태가 1936년 작곡한 ‘코리아 판타지’(Korea Fantasy)를 재미 한인들이 애국가의 곡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임시정부에 요청하였고, 1941년 2월 국무회의는 이를 가결하였다. 그 뒤 임시정부 행사 때 정식 곡으로 채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광복 직후에 기존 애국가가 많이 불렸는데, 한쪽에서는 독립 국가로서 새로운 국가를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곡조가 이별 곡이고, 기독교 찬송가의 가사가 포함되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가운데 『자유신문』 1945년 11월 21일자에 「우리 애국가, 장중 활발하게 새 곡조로 부르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재미 한인들이 이별 곡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의 애국가는 광복된 마당에 더는 적당하지 않다며, ‘코리아 판타지’ 곡조로 바꿔 부르자는 내용이었다.        

이후 “애국가는 이 곡조로 부릅시다”라는 운동이 전개되는가 하면, 음악가협회·문학동맹 공동 주최로 ‘애국가 현상모집’ 행사가 열리기도 했고, 애국가는 국가와 다르다며 새롭게 국가를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듭 제기되었다. 조선아동문화협회는 윤석중 작사의 새로운 애국가를 발표하고는 작곡을 환영한다는 광고를 내보내기까지 하였다. 이에 가사는 하나인데 곡조가 두 개인 애국가가 불려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점차 개선되어 안익태 곡으로 정리되어 갔다.        

이후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되었는데도 ‘국가’에 관한 헌법 조항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부각되었다. 제헌국회에서 ‘국가에 관한 건의안’이 발의되었지만, 통일 이후에 국가를 제정하자는 주장에 그만 보류되었다. 그럴지라도 당시에 ‘국가를 애국가로 대신한다’라거나 ‘남북통일 이후 국가를 제정한다’라는 내용의 문구가 명문화하였다면 이후 불필요한 논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고 흐지부지되기를 반복하였다. 2017년에는 “대한민국 국가를 애국가로 명시화 하자”는 법안이 제기되었고, 2020년에는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을 문제 삼아 애국가를 폐기하자는 주장까지 거론되었다.        

한 나라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국가(國歌)’는 그 나라의 운명과 같이한다. 어느덧 광복 후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이 훌쩍 넘었다. 대한민국은 꾸준히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격상하였다. 이제 격에 맞는 헌법 개정과 아울러 ‘국가’ 문제도 매듭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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