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부상자 치료에 힘쓴

의료선교사들

이달의 독립운동가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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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올리버 알 에비슨 (Oliver R. Avison)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rierson)               스탠리 에이치 마틴 (Stanley H. Martin)

1860~1956                                                    1868~1965                                                       1870~1941       

건국훈장 독립장(1952)                                 건국훈장 독립장(1968)                                     건국훈장 독립장(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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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비슨의 수술 장면 유리건판 필름(1904)(좌) /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시절 에비슨(1919)(우)


에비슨, 세브란스병원을 중심으로 3·1운동을 지원하다

에비슨은 1892년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부임하여 제중원 원장으로 일하며 고종 시의*를 겸하였다. 이후 세브란스병원과 연희전문학교를 각각 설립·운영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 다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일제 헌병경찰로부터 환자들을 적극 보호하였다. 더불어 에비슨은 조선총독부가 선교사를 통해 3·1운동을 진압하고자 마련한 회합에서 일제 만행을 규탄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한편, 미국으로 귀국하는 선교사에게 3·1운동의 실상을 알리는 자료를 보내 한국인 대변에 힘썼다. 정부는 에비슨의 공훈을 기리어 195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시의(侍醫) 임금과 왕족의 진료를 맡은 의사

**시정(是正)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그리어슨, 제동병원을 중심으로 성진지역 3·1운동을 후원하다

그리어슨은 1898년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1902년 함경도 성진에 제동병원을 세우고 의료선교를 하였다. 1909년에는 독립운동가 이동휘에게 교회 직책을 부여하여 그가 일제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19년 성진지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자신의 집을 독립운동가들의 집회 장소로 제공하고 설교를 통해 독립의지를 북돋았다. 또한 만세운동 중 발생한 부상자들을 제동병원에서 정성껏 치료하는 등 성진지역 3·1운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정부는 그리어슨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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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어슨과 성진 제동병원 직원(좌) / 룽징지역의 제창병원 이관 기념(우)


마틴, 제창병원을 중심으로 룽징지역 3·1운동을 지지하다

마틴은 1916년 캐나다장로회 선교회 소속으로 중국 북간도 룽징지부에 부임하여 1918년 제창병원을 설립하고 의료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13일 룽징지역 한인들이 만세운동 전개 중 부상을 당하자 마틴은 수십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정성껏 치료하고 합동 장례를 치르는 등 룽징지역 3·1운동을 지지하였다. 더 나아가 마틴은 1920년 10월 일제가 한인이 거주하던 장암동에서 야만적으로 자행한 학살 방화 현장을 방문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보고서를 발간하여 국제사회에 일제 만행을 폭로하는데 기여하였다. 정부는 마틴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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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민회에서 마틴에게 수여한 메달(1920. 2.)_동은의학박물관 제공(좌) /「제동병원」, 『동아일보』(1921. 3. 17.)(우)


한국인들의 힘(독립운동)으로 

한국인의 머리 위를 가로지른 

먹구름(일제 식민지배)은 사라질 것이다.

성진지역 3·1운동과 관련해 추궁하는 일제 경찰에게 그리어슨이 한 대답(191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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