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우리나라 국호 ‘대한민국’의 

탄생 과정과 의미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글 이계형(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대한민국’ 국민 중, 우리나라 국호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 8월 15일 정부 수립 73주년을 맞아 국호의 탄생 과정과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먼저 대한민국의 국호가 대한제국에서 비롯되었으니 그때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국호의 유래와 변천사

근대 이전의 조선은 중국의 천자와 대등한 위치에 있지 못했다.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 당시 조선은 국왕의 지위를 황제로 높이고자, 국호를 ‘대조선왕국’에서 ‘대조선제국’으로 바꾸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러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면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중국과의 사대 관계의 고리가 끊어져 기회가 찾아왔다. 이를 계기로 1896년 1월 조선은 독자적으로 ‘건양’ 연호를 사용하고 국왕을 ‘황제’로 격상시키려 했으나 아관파천으로 중단되었다. 

1897년 2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뒤부터 개화파·수구파 할 것 없이 ‘칭제 건원’을 상소하였다. 이에 힘입어 1897년 8월 연호를 ‘광무’로 고치고 ‘칭제’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국호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고종은 단군과 기자 이래로 강토가 나뉘어 서로 자웅을 다투다가 마한·진한·변한이 통합했다며, 국호를 ‘조선’에서 ‘한(韓)’으로 고쳐 대한(大韓)으로 정하도록 했다. 그 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다음날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국호로 공식 선포하였다. 당시 ‘대(大)’는 ‘크다’, ‘전부’, ‘모두’라는 뜻으로 관용 접두사로 사용되었고, ‘제국’은 국가의 통치 형태를 말하는 것이니 실제 국호는 ‘한’이었다.

하지만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10여 년 만에 망하였다. 주권을 일제에 넘겨주고 말았다. 그로부터 9년이 흘러 3·1운동이 전국을 뒤흔들었고, 한성을 비롯해 중국 상하이와 연해주 등지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지만 이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하였다. 이때 국호가 ‘제(帝)’에서 ‘민(民)’으로 한 자만 바뀌었다. 황제국에서 주권재민의 공화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후 27년 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굴곡이 있었지만, 한민족 구성원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35년 동안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반도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다. 한반도는 미소 간의 냉전으로 남북으로 갈렸고, 남쪽은 미군에 북쪽은 소련군에 점령당하였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김구를 비롯한 요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면서 통일운동을 전개하였지만, 남북 분단이 현실화되어 가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은 점점 힘을 잃고 말았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 발표 이후 한반도는 미소 냉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찬탁과 반탁으로 남과 북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지만, 양자 간의 견해차만 확인했을 뿐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났다. 결국 1948년 2월 한반도 문제는 UN으로 넘어갔고 소총회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시행이 결의되자 김구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발표하여 분단을 막아보고자 하였지만 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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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대한제국의 ‘대한국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인’, 대한민국의 ‘국새’


국호 ‘대한민국’의 탄생

1948년 5월 남한 만의 총선거가 시행되어 제헌국회가 출범하면서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 제정된 헌법의 제1장 총강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이 국호 문제였다. 이를 두고 헌법기초위원회 위원들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자손만대에 전할 존엄한 국체의 표상이었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결국 표결로서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였다. 

‘대한’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삼일운동 이후 우리 민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광복 운동을 계속하였다. 또 개원식을 거행할 때 의장 식사에도 ‘대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으로부터 배상을 받아오려면 과거의 ‘대한국’이라는 국호래야 청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주효하였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국회의원 상당수는 고려공화국을 선호하였다. 이들은 새 국가를 상징하는 국호로는 ‘고려’가 타당하다며 세계에서 ‘코리아’로 알려진 점을 가장 큰 이유로 내세웠다.본회의에서 ‘대한민국’을 국호로 사용하는 것에 여러 의원의 찬반 토론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국호 사용을 지지하면서 만약 다른 국호를 사용한다면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대한’의 간판을 들고 나올 것이고 그러면 분열과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 우려하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 것에 ‘민국’과 ‘민주공화국’이 중복되는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결국 본회의에서 원안대로 ‘대한민국’ 국호로 최종 결정되었다. 다만,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KOREA’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에 김구는 “대한민국 국호를 어떠한 사람이 계승한다고 할지라도 세계 각국에서 승인을 받을 만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조건이란 임시정부가 이를 이양한다고 하더라도 남북총선거를 통한 남북통일 정부가 아닌 이상 반쪽 정부로서는 계승할 근거가 없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해방 3년 만인 1948년 8월 15일 독립 국가인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였고, 북한에서는 그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전제 왕권 사회에서 비롯되었지만,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민주공화제로 바뀌어 유지되었고, 광복 이후 독립 국가의 국호로 정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했던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격상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주체적으로 역사를 새롭게 쓰면서 세계를 주도하는 일원으로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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