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이달의 독립운동가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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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원용(金元容)1896~1976 서울건국훈장 애국장(1995), 전경무(田耕武)1898~1947평북 정주건국훈장 애국장(1995)

심영신(沈永信)1882~1975황해 송화건국훈장 애국장(1997), 민함나(閔함나)1888~1952경기 부평건국훈장 애족장(2019)


재미 한인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이 결성되다

재미 한인들은 1941년 4월 19일부터 5월 1일까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하여 미주 각지에 흩어져있던 9개 단체를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집행부를 두고, 하와이에 의사부를 두는 이원체제로 운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외교활동을 통해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재미 한인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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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한족대회 결의안(194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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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호놀룰루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1942. 3. 8.)


김원용과 전경무, 외교활동을 통해 독립의지를 선전하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하며  한국의 독립의지를 선전하였다. 1941년 김원용은 의사부 비서위원이자 영문서기에 선출되어 외교·선전활동에 앞장섰다. 1942년 충칭특파원으로 임명된 전경무는 대미외교 활성화를 위한 자체 외교사무소 설립을 제안하였다.

이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동의하면서 1944년 6월 워싱턴에 외교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워싱턴 외교사무소에서 김원용은 위원장으로서 사무소의 운영과 한인 사회의 연락망 유지를 담당하였다. 전경무는 선전부장을 맡아 라디오 방송을 통한 한국의 독립의지 선전 및 태극기가 들어간 우표 발행 주도 등 선전활동에 주력하였다. 정부는 김원용·전경무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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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전경무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와 집행부로 보낸 문서(1944. 8. 22.), 태극기 우표(1944. 11. 2.), 태극기 우표(1944. 11. 2.)    


심영신과 민함나, 독립운동 지원을 위한 자금모집에 힘쓰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외교적 노력과 병행하여 미주 한인사회의 재정 통일을 이루고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힘썼다. 1942년 2월 의사부는 독립금 수봉위원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심영신과 민함나는 의사부 의사위원이자 수봉위원에 선임되어 독립금 모금 예약을 담당하였다. 

이외에도 1945년 3월 연합부인구제회를 조직하고 민함나는 회장, 심영신은 부회장에 선출되어 국내 동포들에게 구호물품을 보내는 등 지원활동에 힘을 쏟았다. 정부는 심영신·민함나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 애국장(심영신), 2019년 애족장(민함나)을 추서하였다.


* 독립금 수봉위원회 

독립금, 혈성금 등의 명칭으로 구미 각지의 외교활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등의 경비를 조달하는 데 필요한 독립운동 자금을 거두어들이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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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신 독립금 예약서(1942. 2. 24.)     

 

본 회의 목적은 대한민족의 독립운동과 

항일전선을 통일하며 항일 승리를 획득하고 

재미 한인단체들을 규합하여 그 역량을 

집중하며 일반 운동을 확대 강화함에 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규정」 제 2조 중에서(194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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