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혹은 거짓

우리의 울림은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 <소리굽쇠>

우리의 울림은 계속되어야 한다<BR />영화

글 편집실


우리의 울림은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 <소리굽쇠>


감독: 추상록
주연: 조안, 이옥희, 김민상
개봉일: 2014년 10월 30일


지난 7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김군자 할머니가 별세하였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이러한 가운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그 해결이 순탄치 않다.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다룬 극영화 <소리굽쇠>를 통해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을 다시금 되새겨보자.

          


        

Q.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다 나을까?

중국 땅에서 외롭게 손녀 향옥과 살아가는 할머니 귀임은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일본군의 말에 속아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와 일본군 위안부로 지내야 했던 아픔을 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광복된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귀임은 수십 년이 흘러서도 밤마다 일본군이 횡포를 부렸던 그때의 악몽에 시달린다.2015년 여성가족부가 위안부 피해자 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조사 결과, 15명(88.2%)이 PTSD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또한 절반가량(47.1%)이 “지금도 위안부와 관련된 악몽을 꾼다”고 답했으며, 위안부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심장이 뛰거나 진땀이 나는 등의 신체적 반응과 불면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이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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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귀임의 인생과 닮은 할머니들을 본 향옥의 마음은 어땠을까?

과거의 아픔 속에 머물러 있는 할머니가 안타까웠던 향옥은 할머니를 고향으로 꼭 모셔오겠다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도착한 한국에서 향옥은 위안부 관련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고, 전시관에서 자신의 할머니와 같은 슬픔을 간직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을 마주한다. “위안소에서 하루 40여 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생전 故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이다.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되었다는 김군자 할머니는 탈출에 번번이 실패하고 그때마다 심한 폭행을 당해 평생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현재 남아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균 나이 91세. 일본 정부의 사과는 요원해 보이는 가운데,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조급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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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위안부 피해, 이제 과거의 일이다?

어느 날 중국에 남아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귀국을 돕겠다며 한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귀임 할머니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서글퍼진다. “중국 땅에서 소외받고 서러우셨던 거 조금이라도 보상받으셔야죠.” “어떻게 보상해? 내 청춘을 돌려주겠소?”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악몽 같았던 기억 또한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처 위에 약을 바를 수는 있고, 아픔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 그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이 받았던 상처와 마주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아직 정당한 사과를 받지 않았기에 눈 감을 수 없음이요,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언제고 이 끔찍한 비극이 반복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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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리굽쇠가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한때.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어린 귀임에게 소년 영준이 다가온다. 영준은 피아노 음을 조율하기 위해 들고 있던 소리굽쇠를 귀임에게 보여주는데…. “하나만 울렸는데 같이 다른 것도 진동하지? 소리굽쇠끼리는 같이 울거든.”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해진 귀임은 소중히 간직해온 소리굽쇠를 손녀 향옥에게 건넨다. 두 갈래로 된 쇠막대인 소리굽쇠는 한쪽이 울리면 다른 한쪽도 같이 공명하는 음향 측정기구다. 소리굽쇠가 가진 ‘공명’의 특징은 곧 ‘공감’을 뜻한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울음에 같이 우는 것, 용기 내어 꺼낸 목소리에 함께 외치는 것.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첫발은 바로 공감이다.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멈추지 못한 그 울림에 우리의 공명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