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살피다

독립운동사를 간직한 대한민국 기념일

독립운동사를 간직한 대한민국 기념일

글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독립운동사를 간직한 대한민국 기념일


우리나라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 있다. 이중에는 설날과 추석 같은 민족의 대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부처님 오신 날같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정해진 국경일도 있지만 상당수는 독립운동사와 맥을 같이 한다.

          


    

3, 4월: 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삼일절은 3·1운동을 기념하는 날로서 가장 대표적인 국경일 중 하나다. 1919년 3·1운동은 약 4개월간 25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우리 역사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의 여파로 인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이로써 독립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3·1운동은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사이다.4월 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3·1운동의 여파로 8개의 정부가 선포되었고 그 중 3개가 구체화되었다. 서울을 기반으로 한 한성정부·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상하이임시정부가 만들어지는데, 이 세 정부가 통합하여 구성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다. 임시정부의 경우 여러 부침을 겪었지만 끝까지 생존하여 민족 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상하이 시절과 막바지 충칭에서의 시절은 임시정부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4월 13일은 이러한 임시정부의 역사를 되새기는 날이 되었다.        


alt

제35회 삼일절 기념식

alt

제6차 임시의정원 폐원식 기념사진(1919년 9월 17일)

           

5월: 어린이 인권 의식의 탄생

5월 5일 어린이날이라고 하면 천도교의 소년운동과 방정환을 떠올릴 수 있다. 어린이에 대한 인권 의식이 미약했던 시절, 방정환은 이를 정면으로 문제 삼으면서 한국의 어린이 인권 의식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던 방정환은 1923년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또한 어린이날 외에도 천도교도로서 다양한 소년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고취시키는 등 소년운동의 역사를 개척했다는 데서 방정환의 행적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6월: 난세에 탄생한 영웅들

6월 1일 의병의 날에서 의병은 독립운동사의 범주를 넘어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인 곽재우의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 6월 1일이다. 당시 의령지방에서 궐기한 곽재우는 자신의 가산(家産)을 투자하여 경상도 의병투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육지전에서의 전세회복에 큰 역할을 하였다. 곽재우뿐만 아니라 수많은 의병이 국난의 위기 가운데 등장하였으며, 이 전통은 구한말 외세의 침략 가운데 재현된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며 을미의병(1895)이 일어났고 을사늑약에 반발하여 을사의병(1905)이 일어났다. 또한 정미7조약과 군대해산 등에 자극받아 정미의병(1907)이 일어났다. 의병의 날은 이러한 의병의 전통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날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러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무엇보다 6월 6일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날인 현충일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한 6·25전쟁일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상 수많은 전란과 외세의 침략을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였기에 무엇보다 6월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특별하다.

  

alt

방정환

alt

의병장 곽재우

alt

의병 모습

          

11월: 나이가 무관했던 독립운동 열사들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항일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법으로 지정한 날이다. 학생 간 갈등으로 시작된 광주학생운동은 학생들의 민족의식과 신간회의 적극적인 지원 등으로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특히 학생들이 주도했기에 ‘조선인을 위한 교육’을 요구하는 등 운동의 성격이 여타 독립운동과는 차별되는 부분이 있었다. 원래는 학생의 날로 불렸다가 2006년 이후 학생들의 자율적인 역량과 애국심 함양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재탄생하였다. 한편 같은 달 11월 17일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제정된 순국선열의 날은 제정 과정이 독특하다. 1939년 11월 2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에서 결정된 날이기 때문이다. 지청천 등 6인의 제안에 따라 망국일인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하였다. 대한제국은 사라졌지만, 독립운동사라는 새로운 정통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사가 전개되기를 염원한 날인 것이다.        


alt

광주학생독립운동 30주년 및 제7회 학생의 날 기념식(국가기록원 제공)

alt

제1회 광복선열추도회(1957년, 국가기록원 제공)

       

8월: 광복의 의미와 대한민국정부 수립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날,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일왕이 항복을 선언한 날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지역의 일본 식민지 혹은 점령지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에 대한 기억은 국가·지역·민족별로 다르다. 타이완이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식민지배 기간이 길었고, 중국은 약 15년간 전쟁 중인 상태였으며, 동남아시아 역시 지역별로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중에 있던 이희승은 해방 당일 오후 1시 한국인 의무관이 항복 사실을 알려주어 같이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당시 사진들이 보여주듯 시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청년들은 동네에 있는 신사나 봉안전 같은 일제의 강요로 세워진 시설물을 파괴하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농촌의 경우 하루가 지난 16일에 해방 소식이 알려졌고, 17일이 되어서야 전국적으로 이 사실이 알려졌다. 다만 해방 후에도 한동안 조선총독부가 치안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성·평양·대전·충청·홍성·진남포·원산·해주 등지에서 민중대회와 만세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안타깝게도 해방 이후 수년간 8월 15일은 감격보다는 좌우익의 분열과 갈등, 자파(自派)의 세력 과시를 부리는 날로 악용되었다. 미군정의 입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종전 기념일로, 1946년 미군정청은 8·15해방기념위원회를 조직하여 서울역 광장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흥미로운 점은 플랜카드 게양 방식이나 축하 퍼레이드를 위한 꽃전차 같은 것들이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방식과 같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35년간의 지배로 인한 문화적 영향이 컸던 탓이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부터 8월 15일은 ‘광복절’이라는 국경일이 된다. 그 전까지는 ‘해방절’, ‘해방 몇 주년 기념’ 등으로 불렸는데, 1949년 10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 제53호가 공포되면서 용어가 정리되었다. 이때 비로소 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 등 4대 국경일이 제도화되었다. 개천절의 경우 단군신화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대종교가 독립투쟁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어천절(御天節)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기념식을 거행했다는 점, 그리고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유구한 역사와 문화’라고 명문화한 점, 무엇보다 신생국가 대한민국이 한민족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한 점 등을 고려하면 국경일로 지정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절이라면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날이라는 사실이다. 광복 이후 3년간의 진통 끝에 1948년 5월 10일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며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다시 10인의 헌법위원회를 조직하여 제헌헌법 초안을 마련하였고, 국회 심의를 통해 7월 17일에 제헌헌법이 확정되었다. 이후 제헌헌법에 의거하여 국회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이 뽑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날이 바로 8월 15일인 것이다. 따라서 광복절은 일제강점으로의 해방과 대한민국정부 수립이라는 의미가 담겨 매우 각별한 국경일이 되었다.        


alt

해방 소식을 듣고 거리에 나와 만세를 부르는 국민들
alt

광복 1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는 김구

(1946년 8월 15일, 김구재단 제공)

alt

대한민국정부 수립 기념식(1948년 8월 15일)

          

삼일절과 광복절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 있어서도 뜻깊은 날로 여겨진다. 때문에 이날은 대통령에 의해 중요한 대북 메시지가 발표된다든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굵직한 정책이 발표되곤 한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가장 중요한 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기념일, 특히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국경일에는 그저 편히 쉬는 날쯤으로 여기기보다는 그 날들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 참으로 유익할 것이다.

        


       

심용환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 현재 팟캐스트 <진짜 역사 가짜 역사>를 통해 재미있고 올바른 역사 이야기를 전파하고 있으며, CBS와 공동으로 <심용환의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의 역사토크』, 『단박에 한국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