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발자취

일제가 남긴 상흔을 기록하다

독립의 발자취<BR />

글 편집실

 

일제 수탈의 흔적과 식민지배가 남긴 상흔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가 있다. 흩어져있던 궤적을 집대성해 우리 앞에 담담히 펼쳐놓은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끝난 줄만 알았던 뼈아픈 역사가 현재 진행형으로 덜컥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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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홍 사진작가


Q. 일제가 남긴 상흔들에 언제,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1990년대 당시 충남 논산 강경읍에 있는 일식 목조주택을 촬영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곳을 다시 방문하였는데, 그 건물이 흔적 없이 사라졌더라고요. 그제야 헐린 건물이 일제강점기 경제수탈의 근원지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강경지점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08년 일제는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기 위해 경성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창립하였고, 1910년 9월 15일 강경지점을 설립하였습니다. 강경지점은 전북과 충남 지역의 국유지와 개간지를 확보하여 일본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매각함으로써 조선의 소작인을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았지요. 이러한 일제 수탈의 흔적이 남은 건물이나 장소들이 대부분 철거되었거나 혹은 본래 상태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상당수가 여전히 잔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외면할 수 없어서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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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지 전북 김제평야,〈제국의 평야〉 (1999년 촬영)


Q. 특히 일제 ‘건축물’에  주목하였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점차 사라지는 상흔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먼저 일제강점기 쌀과 농지의 수탈거점이었던 호남평야를 찾아갔습니다. 1930년대 일본인 구마모토 리헤이는 호남평야의 수많은 농지를 매입하여 자신의 왕국을 조성하였습니다. 구마모토가 소유했던 군산농장을 시작으로, 전북 익산·전주·김제·정읍·완주에 산재한 일본인 농장과 주택 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교통시설인 철도급수탑에 주목하였습니다. 급수탑은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일제가 우리를 장기간 교묘하게 통치하는데 사용한 구조물입니다. 일제는 철도라는 ‘침략 하이웨이’를 이용하여 동아시아를 광기의 무대로 삼은 것이지요. 디젤기관차 등장 후 1967년 8월 31일 운행을 중단한 급수탑은 현재 전국에 스무 군데 남아있습니다. 이렇듯 아직 우리 삶 속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모른 채 묻어둘 수 없어서 〈제국의 평야〉, 〈제국의 바벨탑〉이라는 주제로 연작해 나갔습니다.


Q. 이후 피사체를 ‘일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로 돌린 계기가  있었나요.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신사(神社) 건물을 담기 위해 2003년 전남 고흥 소록도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한센병을 앓다가 일제 경찰에게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한 장기진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군수물자였던 가마니를 짜다가 동상에 걸려 두 손이 잘리고, 건물과 도로 건설에 필요한 벽돌을 만들다 파상풍에 걸려 두 다리를 잃은 사연을 들려주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단종(斷種)을 당한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지요. 그의 육신은 일제 식민통치가 남긴 고통을 온몸으로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피해사실을 침묵할 수 없어서 인물을 통해 과거의 상흔을 추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제국의 휴먼〉이라는 주제로 일제에 의해 ‘강제노역·이주를 당한 사람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을 앵글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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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입원·노역 및 단종(斷種) 피해자 故 장기진,〈제국의 휴먼〉(2003년 촬영)

Q. 촬영 장소와 인물을 섭외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텐데요.

20년 전부터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러시아 연해주·중국 길림성 등지를 돌며 일제에 의한 피해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낯선 타국에서 촬영지를 답사하고 인물을 섭외하는 과정은 많은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지요. 기획부터 섭외, 이동, 촬영, 후작업 등을 홀로 하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 후에도 경로를 찾을 수 없을 때는 국내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마쳤습니다. ‘731부대 생존 피해자’ 촬영은 중국 연변지역에 사는 지인이 박물관 관계자를 연결해줘서 성사될 수 있었고, ‘남경대학살 생존 피해자’를 섭외할 때는 남경시청에 공문을 보낸 후 허가를 받고 진행하였습니다.


Q. 상처를 입은 피해자를 마주하는  일은 늘 조심스러울 것 같은데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여계신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은 적이 있는데, 대부분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꺼려하셨고 결국 문필기, 이옥선 할머니 두 분만 촬영에 응해주셨습니다. 그때 ‘오랜 세월도 가슴 속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피해자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에 대한 필요성과 의무감을 갖고 작업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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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문필기, 〈제국의 휴먼〉(2006년 촬영)

Q. 지난 2월 〈제국의 휴먼〉으로  제3회 FNK 작가상을  수상하였는데 소감이 어떠한가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일입니다. 상업적인 활동보다는 ‘순수 사진’에 집중해왔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고,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때도 있었지요. 투자한 자본과 시간, 정성에 비해 물질적 소득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념과 소명의식을 잃지 않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상이 더욱 반가웠어요. 꿋꿋하게 버텨온 시간을 격려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Q. 최근 개최된 전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전남 화순에 있는 소아르갤러리의 초대를 받아 〈제국의 휴먼〉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이번 전시는 일본제국이 일으킨 침략과 전쟁에서 생존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가로 600cm·세로 240cm의 대작으로 제작한 ‘히로시마 원폭에 피폭된 사망자 위패’ 사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소아르갤러리(061.371.8585)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Q.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하며 느낀 점은 과거와 같은 역사는 다시 재발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제강점기가 남긴 뼈아픈 사실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이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 얻어졌다는 사실을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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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이주 및 한국전쟁 참전 피해자 전광운,〈제국의 휴먼〉 (2006년 촬영)

Q.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오지금까지 기록해온 〈제국의 휴먼〉, 〈제국의 평야〉, 〈제국의 바벨탑〉 연작은 일종의 일본식민지 피해에 대한 보고서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작업을 이어 나가며, 일제강점기·한국전쟁·분단의 역사 등을 거치며 대립된 이데올로기의 흔적도 다뤄볼 예정입니다.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 초반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이념의 대학살, 즉 제노사이드에 대한 작업을 현재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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