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일본의 끝없는 역사 왜곡,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BR />

글 이계형(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얼마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IT보안 전문업체 (주)테르텐 대표로 재직할 당시 일본의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 출판업체와 디지털 교과서 서비스를 계약한 것이 확인되었다. 후보자 측은 ‘세계 여러 업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거래 규모도 적었기에 문젯거리가 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어떻게 왜곡해 왔으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진실을 감추기 위한 공작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는 1953년에 처음 제기되었다. 당시 일본은 ‘이케다-로버트슨’ 회담을 계기로 재군비와 자위대를 창설하였는데, 이를 기회로 우익은 좌파 세력 견제 차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상황을 비교적 진솔하게 기술한 교과서를 문제 삼았다. 이후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조사관 제도를 신설하여 검정을 강화하면서 교과서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가해 사실을 감췄다. 그 뒤 1982년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국제적 문제로 대두하였다. 1980년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한 자민당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들고나왔다. 자민당이 교과서에 애국심에 관한 기술이 빠졌고 지나치게 좌경화되었다며 비판하자, 보수언론이 이에 가세하여 애국심을 강조하는 기사를 쏟아냈고 관련 책들이 서점에 깔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문부과학성은 사회 교과서에 평화헌법, 자위대, 북방영토, 미일 안보협력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더 나아가 문부과학성은 그해 6월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침략’ 용어 대신 ‘진출(進出)’이란 표현을 권고하였다. 


더욱 노골화된 역사 왜곡

그동안 일본에 과거 역사에 대한 ‘사죄’를 요구해왔던 한국 정부는 이를 심각한 역사 왜곡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한국 정부가 문제 삼았던 부분은 기존 교과서와 달리 3·1운동을 ‘폭동’으로 기술하여 일본의 가혹한 탄압을 합법화하려 한 점이다. 이외에도 일본의 ‘토지 수탈’을 ‘토지 소유권을 잃었다’라고 하거나 ‘강제로 신사참배를 하게 되었다’를 ‘신사참배를 장려하였다’, ‘한국어 사용이 금지되었다’를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사용되었다’로 수정하고, ‘강제징용, 강제징병’ 표현에서 ‘강제’ 용어 등을 삭제하고자 한 점을 지적하였다. 우리가 35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 지배 속에서 수탈·차별·강요·회유·민족말살·착취 등을 당해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있고, 이는 객관적인 인식과 판단하에 기술되어야 함에도 일본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려 한 것이다.


반일 감정을 불러온 일본의 처사

교과서를 둘러싼 한일 양국 정부의 갈등은 한국 내 반일 감정으로 표출되었고 연일 한국 언론은 일본 비판 기사로 도배되었다. 또한 반일 집회와 각 단체의 성명이 이어졌으며 일본 상품 불매 운동도 전개되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 대만, 동남아 국가들도 이에 가세하여 일본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때 전국민적인 모금 운동을 벌여 ‘독립기념관’ 건립에 나섰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일 것이다. 중국도 베이징 중일전쟁 발발터에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세워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대응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오히려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고 되레 한국 측 교과서에 일본과 관련한 내용이 잘못 기술된 것이라며 물타기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파동은 일본 정부가 ‘이웃한 아시아 국가와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있어 국제이해와 협조를 구한다[근린제국조항]’라는 검정기준을 신설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86년 일본 우익단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신편 일본사』를 집필하고 검정을 신청하면서 다시금 교과서 파동이 불거졌다. 이는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했으나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총리 지시로 네 차례나 직권 수정한 뒤에서야 통과되었다. 


‘강제 연행’과 ‘일본군 위안부’ 표현 사라져

그렇다고 교과서 왜곡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강화되었다. 1995년 일본 내 보수우익은 ‘자학 사관’을 비판하면서 전쟁을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7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문부과학성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역사기술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는가 하면(1999년), 자신들이 쓴 교과서를 검정 신청했다(2000년 4월). 여느 교과서보다도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가해 사실을 미화 왜곡하고 축소 또는 삭제한 내용이 많아 큰 파문이 일었다. 이로써 한국 측의 반일 감정은 고조되었고, 한일 양국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문부과학성은 200여 개 항의 수정지시를 내렸으나, 2001년 4월 일부만 수정한 채 검정을 통과하였다. 비록 문제된 교과서의 채택률은 0.1%에 불과하였지만, 2002년도부터 정식으로 중학교 역사 교과서로 사용됐다. 이를 계기로 2002년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설치되어 6년간 소기의 성과는 거뒀지만, 2011년 3월 이후부터는 활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2006년 9월 아베 내각이 시작되면서 일본 정부는 ‘교육기본법’을 개정하여 ‘애국심 교육 강화’ 조항을 삽입하였고, 이에 따라 다시금 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문부과학성은 이를 근거로 2008년 7월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판에 독도 영유권 명기를 공식 발표하였고, 이는 2009년 12월 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도 담겼다. 연장선에서 2010년 3월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초등학교 교과서와  2011년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였다. 2016년에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영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는 고교 사회과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였다. 최근에는 2023년부터 일본 고등학교 2학년 이상 학생이 사용할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연행’과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아예 삭제되었다. 이에 더하여 일본의 보수우익단체인 ‘역사인식문제연구회’는 ‘강제동원’·‘일본군 위안부’·‘사도광산’ 등과 관련하여 수정주의 역사관을 확산하여 자신들의 역사를 감추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단체는 일본의 역사교육과 언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인사들로 꾸려진 조직이다. 



역사 왜곡 대응에 필요한 우리의 자세

이에 대해 한국의 대응은 1970년대에 학자들의 개별적인 노력이 있었는데, 1980년대 이후부터는 역사 관련 정부 기관, 학술단체, 연구자들이 일본 교과서 분석과 아울러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였고 공동역사교과서를 펴내기도 하였다. 역사분쟁의 모델로서 ‘독일-프랑스’, ‘독일-폴란드’의 사례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대안도 제시되었다. 그런데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는 다른 국가와 차원을 달리한다. 그동안 행태를 보면 극우단체가 앞장서고 자민당이 힘을 보태 분위기를 띄운 뒤에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교과서에 반영하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즉 일본 정부의 우경화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맞물려 있다. 역사교육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쳐 일본제국주의의 군국주의를 경계토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 평화를 실현하는 출발점이자 보편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날의 반성을 통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가 한일관계를 복원한다고 나서고 있는데, 이에 앞서 올바른 역사의 합일을 이루는 것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참다운 동반자 관계 회복은 신뢰를 바탕으로 올바른 역사교육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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