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여성운동과 민족해방에 앞장선 

박원희·김영순·조복금

이달의 독립운동가<BR />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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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들이 단결하여 근우회를 조직하다

1927년 5월 27일 ‘조선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근우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근우회는 창립 이후 국내외에 60여 개의 지회를 점차적으로 설치하고 강연과 야학 등을 통해 여성의식을 향상시켰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관련된 여학생들의 항일운동을 지원했고, 기관지 『근우槿友』를 발간하며 여성 계몽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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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 발회식(1927.06.17.)(좌) / 근우회 강령 및 규약

근우회 조직에 앞장선 박원희와 김영순

근우회 조직에 앞장선 박원희와 김영순은 근우회 창립 이전부터 여성 계몽과 민족해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박원희는 1926년 중앙여자청년동맹 등을 조직하고, 강연 등을 하며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김영순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애국지사들을 돕기 위해 조직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서기로 활동하였다. 이때 독립자금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낸 일이 발각되어 1920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각각의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던 박원희와 김영순은 1927년 5월 27일 YMCA강당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두 사람은 근우회 각 부서 사업과 임원, 발회식 일정과 장소, 지회 설치 등을 결의하였다. 두 사람은 부인교양을 위한 강연활동을 전개하며 여성 단결과 지위 향상에 앞장섰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리어 박원희(2000년)와 김영순(1990년)에게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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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자교육의 현상과 근본정신」,『동아일보』(1927.07.08.)_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좌)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동지들 사진(1번 김영순)

근우회 경상남도 하동지회에서 활동한 조복금

근우회 경남 하동지회는 1928년 7월 1일 결성되었다. 국내외 60여개의 지회 가운데 하동지회는 부인 야학을 개설한 몇 안 되는 지회 가운데 하나였다. 하동청년동맹 여자지부에서 활동하던 조복금은 하동지회 결성에 참여하여 서무재정부를 맡는 등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전국대회 대의원과 하동지회 1주년 기념강연회 강사로 선출되었다.          

조복금은 근우회 해산 이후 경상도 일대에서 노동운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32년 공산주의자협의회 전단을 출판·배포한 혐의로 붙잡혔고, 1933년에는 전북·전남·경남 등지의 사회주의 비밀 결사 조직과 관계되기도(일명 전북교원비사사건 全北敎員秘社事件) 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8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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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 하동지회 설립」, 『중외일보』(1928.07.05.)_국사편찬위원회 제공(좌) / 

「전북교원비사秘社 날로 확대」, 『동아일보』(1933.09.13.)_ 국사편찬위원회 제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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