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김구

이름에 담긴 독립의 역사

들어가며<BR />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의 본관은 안동(安東),

어릴 때 불리던 아명은 창암(昌巖)이었습니다.

18세가 되던 해,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동학사상에 심취하여

이름을 창수(昌洙)로 바꾸게 됩니다.

성인이 된 창수는 치하포사건으로 감옥에 갇혀 갖은 고초를 당하고,

2년 뒤 탈옥에 성공한 후 신분 위장을 위해 두호(斗昊)라는 가명을 썼습니다.

이후 공주 마곡사에서 잠시 승려로 생활하며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얻고

1년간의 승려 생활을 마치고 환속 후에는 두래(斗來)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1900년 여름에는 심심산골인 김천 성태영 집에서 

‘김구(金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던 김구는 1911년 1월 안악사건으로 투옥되어 

1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1915년 가출옥하는데 

이때 이름을 거북 구(龜)에서 아홉 구(九)로 바꾸었습니다.  


김구는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국무령에 올라 본격적인 항일운동을 준비하는데, 

1931년 12월 28일에는 도쿄 이봉창 의사에게 

백정선(白貞善)이라는 가명으로 돈을 송금했습니다. 

이봉창·윤봉길 의거 후에는 장진구(張震球) 혹은 장진(張震)으로 행세하였고, 

1938년 그의 나이 63세가 되어서야 본명 김구(金九)를 드러내놓고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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