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관

시대의 등불, 만해 한용운

인문학관

글 백낙천(배재대학교 인문사회대학장)



만해 한용운은 식민지 현실에 정면으로 응전하면서 개인과 시대 그리고 역사의 총체적 의미를 끊임없이 반문하며 치열하게 시대를 겪어냈다. 그는 민족혼을 일깨운 선각자였으며, 빛나는 모국어를 노래한 위대한 시인이었다. 그의 삶이 끝난 후에도 풍란화 매운 향내를 고고하게 발하면서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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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한용운 수감기록표


불교 혁신과 조국 독립에 앞장서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요, 선승인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으며, 6세부터 서당에서 10년간 한학을 공부하였다. 1894년 그의 나이 16세 되던 해에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이 일어나자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과 생활 방편으로, 1896년에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해 불경을 공부하였다. 이때 중국의 양계초 사상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1901년 고향으로 돌아와 2년 가까이 은신하며 지내다가, 1905년 강원도 백담사로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동시에 다른 세계에 관심이 깊어 만주와 시베리아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불교와 동양 철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1910년에 국권이 상실되자 국치의 슬픔을 안은 채 만주로 떠났고, 그곳에서 독립군 훈련장을 다니며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심어주는 데 전력하였다. 그러다가 1911년에 박한영 등과 승려대회를 개최하여, 당시에 만연한 친일 불교의 그릇된 일들을 폭로하였다. 1913년에는 조선 불교의 침제와 은둔주의를 비판한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여 불교의 유신뿐만 아니라 구태의연한 현실 안주에 만연한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만해는 자아의 발견, 평등주의, 구세주의를 기본으로 하여 불교의 실천적·사상적 활동을 확대해 갈 것을 주장하였다. 1917년경부터 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한용운은 1918년 『유심』이라는 불교 잡지를 간행해 불교 포교와 민족정신을 고취시켜 나갔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 때는 백용성 등과 함께 불교 지성을 대표해 참여하였으며, ‘기미독립선언서’ 작성에 주도적인 책임을 다하고자 하였다. 또 독립선언서 끝부분에 행동 강령인 ‘공약 3장’을 작성하여 추가하기도 하였다. 1920년에는 3·1운동 주동자로 잡혀 3년간 감옥 생활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그의 독립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조선 독립 이유서』를 집필하였다. 출옥 후에는 일본 경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그리고 1927년에는 항일 단체인 신간회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중앙집행위원과 경성 지회장을 겸직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한용운은 1938년 불교계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만당 사건’이 일어난 뒤 배후자로 검거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일제의 황국신민화 및 창씨개명에 결연하게 맞서 투쟁하다가, 1944년 6월 29일 성북동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쓰러져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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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표지(좌) / 『님의 침묵』의 서시이자 표제시(우)


『님의 침묵』으로 빛나는 문학의 향기

한용운은 『창조』 동인지보다 한해 앞선 1918년에 『유심』지에 두세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후에도 장편 소설 『흑풍』과 『후회』 등을 신문에 연재하고 한시 및 시조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1926년에 간행된 『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시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한국 문학사에 빛을 발하였다. 당시 시인들 중 일부는 일본을 통해 서양의 근대 문학에 접근하면서 낭만이나 감상 또는 관념에 매달려 자아 상실과 역사의식이 결여된 상태로 현실에 안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용운은 이들과 달리 자생적 근대화의 투철한 인식을 가지고 종교와 예술의 접점에서 치열한 역사의식을 구현하였다. 또한 문학적으로도 은유와 역설을 탁월하게 구사하여 시의 형식적 면모와 완결성을 제대로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시적 언어의 사용 기법에서도 발전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시집 『님의 침묵』은 한용운이 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쓰기 시작한 것으로, 1926년 화동서관에서 초간본을 발행하였다. 시집에 수록된 시는 민족 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과 희망을 형상화하였다. 『님의 침묵』의 구성은 ‘서문, 목차, 시집 본문, 독자에게’ 형식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타고르(R. Tagore)의 시집 『원정』을 참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 이유로는 한용운이 『유심』지에 타고르의 글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바 있으며, 『님의 침묵』 안에 ‘타고르의 시를 읽고’라는 시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타고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시집 본문에는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알 수 없어요’, ‘복종’, ‘나룻배와 행인’ 등 모두 88편의 시가 대체로 기(이별의 시편), 승(슬픔과 고통의 시편), 전(슬픔의 희망으로의 전환 시편), 결(만남을 향한 시편)이라는 극적 구성을 취한 연작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그중 첫 번째 시 ‘님의 침묵’은 조국을 상실한 시대를 임이 없는 시대로 규정하면서, 그 임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을 종교적인 바탕 위에서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전체적으로는 기(임과의 이별), 승(이별 후의 고통과 슬픔), 전(슬픔의 희망으로의 극복), 결(영원한 사랑)이라는 전개 과정을 지니고 있다. ‘님의 침묵’의 끝부분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9행에서는 임을 상실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삶에 있어서 헤어짐과 만남의 역동성이며 결국 이 둘은 하나라는 역설적 진리를 담으면서,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만남을 예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10행에서 임은 침묵하고 있으나 진리의 음성을 끝없이 갈구하고 이를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이 시에서는 밝음과 어둠, 슬픔과 희망 등의 상호 모순되는 시어를 대응시켜 상반되는 이미지를 합치시켰다. 또 아름다운 우리말 구사, 고도의 상징적 표현을 통해 서정성의 깊이를 한층 더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 능력의 한계를 자각하는 모습에서 더욱 비장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한용운 자신이 치열한 삶을 살면서 시대정신을 일깨워 위대한 성취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용운의 문학은 불교 사상과 독립 정신이 예술적으로 탁월하게 결합했다는 데서 자유와 평등사상을 담아내고 있으며, 민족의식으로 집약된 불교적 세계관과 투철한 독립의식은 한용운 문학의 뿌리이자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한용운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서릿발 같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면서 저항 정신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미학적 완성을 보여준 그의 시혼은 민족의 정신사적 중요한 자산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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