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대구사범학교 청년들,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을 이끌며 

독립역량을 키우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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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권쾌복(權快福): 1921~2009, 경상북도 칠곡, 건국훈장 독립장(1963) 

배학보(裵鶴甫): 1920~1992, 경상북도 성주, 건국훈장 애국장(1991)

유흥수(柳興洙): 1921~2016, 충청남도 서산, 건국훈장 독립장(1963)


대구사범학교 청년들,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독립을 준비하다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일제의 대륙침략이 확대되던 193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그중 대구사범학교 9기생 학생들을 주축으로 1941년 2월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조직 80주년)’은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역량을 키워나갔다. 일제 말 다혁당을 비롯한 대구사범학교 청년들의 비밀결사 운동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독립을 준비해나갔던 청년들의 뜻깊은 항쟁이었다.


백의단을 결성하여 민족의식을 키워나가다

권쾌복, 배학보, 유흥수는 1937년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9기생으로 입학하였다. 1939년 7월 민족차별에 저항하여 일어난 왜관사건**으로 선배들이 대거 퇴학당하자 세 선생은 비밀결사 ‘백의단(白衣團)’을 결성하고 정세를 논의하는 모임을 가졌다. 비록 백의단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으나 후일 학생들이 비밀결사 조직을 통해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대구사범학교 8기생을 주축으로 1940년 문예부, 1941년 연구회 등 비밀결사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8기생들의 졸업으로 유지가 어려워지자 세 선생은 동기생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비밀결사로 ‘다혁당’***을 조직하였다.


*심상과(尋常科): 대구사범학교 5학년 교육 과정으로, 졸업 후 2종 훈도(초등학교 교사) 자격증 부여


**왜관사건: 1939년 7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서 경부선 철로 공사에 강제동원된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과의 차별에 반발하여 일본인 교사에 저항한 사건


***다혁당(茶革黨): ‘영웅은 다색(茶色, 검은빛을 띤 주홍색)을 좋아한다’는 뜻의 ‘다’와 혁명의 ‘혁’을 조합한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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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구사범학교_경북대학교 대학기록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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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조회 풍경_대구향토역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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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학생사건』_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왼쪽) / 학창시절의 유흥수 선생(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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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1940. 1.)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을 이끌다

1941년 2월 15일, 대구사범학교 학생 17명은 유흥수의 하숙집에 모여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은 당수-부당수 아래 총무·문예·예술·운동 분야의 4개 부서를 두었고 학생들의 실력 양성을 통해 독립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에 힘을 보태고자 하였다. 권쾌복은 백의단 활동 경험으로 당수를 맡았고 배학보는 부당수, 유흥수는 문예창작부 책임을 맡아 다혁당 지도부로서 활동을 이끌어나갔다.

다혁당은 한글로 된 역사·문화서적을 읽는 토론회를 비롯하여  독립을 준비하며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또한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후배들을 지도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결성 5개월여 만에 일경에 발각되어 세 선생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일제히 검거되면서 다혁당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다혁당을 조직하여 활약한 세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63년 독립장(권쾌복, 유흥수), 1991년 애국장(배학보)을 수여하였다. 


(다혁당)은 강한 조직이다, 

정말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거기 있는 당수나 부당수는

백의단 때 단장·부단장과 한 가지입니다.

『독립유공자증언자료집』 1. 권쾌복 선생 증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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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교사건 예심종결서」(194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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