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은 

어떻게 마련되었나?

들어가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이후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한 이회영 선생.

당시 처분한 재산이 소 13,000마리 값,

현재 시세로 600억 원에 이르는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일제에 국권을 뺏긴 이듬해인 1911년 1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과 99칸짜리 임청각을 처분한 이상룡 선생. 

그렇게 마련된 독립운동 자금은 만주의 독립운동 기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쓰였다.


1920년 이후 국내 군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밀사 역할을 했던 정정화 선생.

그는 자금 조달을 위해 일제의 철통같은 감시를 뚫고  

위험천만한 국내 잠입을 무려 여섯 번이나 감행하였다.


그들 모두, 그 누구의 강요도 없이 

독립군의 곤궁한 처지를 알고 

자진하여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앞장섰다.

그것은 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하였음이며,

나라 없이는 목숨도 부(富)도 중요치 않았던 터이다.



우리는 압록강을 가로질러 쪽배를 띄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어디에선가 왜경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밤의 강 소리는 사람을 위협한다. 차라리 짐승의 포효라면 방향이라도 알고 

달아나기라도 하련만, 한밤중의 강바람 소리는 달랐다.

전혀 으르릉 거리지 않으면서도 사방에서 사람을 옥죄고 들었다.

쪽배가 압록강의 중국 쪽 언저리에 닿았을 때 나는 제풀에 지쳐 기진맥진해 있었다.

정정화〈장강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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