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로 보는 역사 이야기

1948년 첫 올림픽 출전과
런던으로의 여정

1948년 첫 올림픽 출전과 <BR />런던으로의 여정

글 독립기념관 자료부


1948년 첫 올림픽 출전과

런던으로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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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 선수촌 입촌식



1948년 런던올림픽은 우리가 국권을 회복하고 최초로 참가한 올림픽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림픽 출전을 갈망하고 있었다. 당시 올림픽 참가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을 해결해야 했다. 이를 위해 ‘조선체육회’는 ‘올림픽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내 경기단체가 구성되어 있는 육상, 농구, 복싱, 축구, 사이클, 역도 등 6개 경기단체를 각각 국제연맹에 가입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선결조건이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 등록 과정에서 많은 고난과 역경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전경무가 1947년 5월 스톡홀름 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하게 된다. 다급해진 올림픽대책위원회는 미국에 살고 있던 이원순에게 전문을 보내 전경무 대신 스톡홀름에 참석할 것을 당부하였다. 당시 미국 시민권이 없었던 이원순은 사제 여권을 만들어 영국 총영사관을 찾아가 입국사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후 바로 스톡홀름으로 떠난 이원순은 IOC 가입 청원서를 제출하였고, 드디어 IOC 가입국이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선수단은 우리나라가 독립국으로서 정부수립을 선포하지 못했던 이유로, ‘미국육군군정청 외무처’에서 발급한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출국하게 되었다.

선수단의 결단식과 환영식은 1948년 6월 18일 국회의장 이승만 등과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6월 21일에는 종로 YMCA체육관에 집합하여 남대문을 거쳐 서울역까지 행진한 후 8시발 해방자호(解放者號)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였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를 거쳐 홍콩으로 이동한 후 두 그룹으로 나누어 1대는 7월 8일, 2대는 7월 11일에 런던에 도착하였다. 입촌식은 1대가 도착한 다음날인 7월 9일 억스브리지(Uxbridge) 선수촌에서 진행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올림픽 기간 동안 넘치는 투지와 열정으로 경기에 임하였다. 그 결과 역도와 복싱에서 각각 1개씩 2개의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경제가 어렵던 시절 성금으로 런던 여정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고자 했던 국민과 어렵게 만들어진 경비로 방콕, 뭄바이, 카이로, 로마, 암스테르담 등의 힘든 여정을 거쳐 런던으로 향하였던 한국 선수단 그들 모두에게 우리의 첫 올림픽은 고난이자 희망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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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육군군정청 외무처 발행 여행증명서_런던올림픽 사이클 선수 황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