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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여행의 묘미
경상북도 예천

시골 여행의 묘미 <BR />경상북도 예천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시골 여행의 묘미 

경상북도 예천



시골에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가 있다. 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듯, 도시에서 태어나 수십 년째 살고 있지만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시골을 향해 있다. 자박자박 고샅길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고 느린 일상의 풍경들이 마음에 쉼표를 찍는 것, 이러한 소확행이 시골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그 묘미를 찾아 예천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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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회룡포마을



섬이 되려다 멈춘 듯한 회룡포마을

같은 풍경이라도 바라보는 눈높이가 달라지면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한 이유로 드론이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드론 동호회는 이제 흔하디흔한 동호회가 되었다. 드론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그 재미를 좇아 휴일이면 드론을 창공으로 날려 보낸다. 우리나라에는 하늘 높이 나는 드론의 시선으로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다. 일명 ‘물돌이 마을’로 알려진 안동 하회마을과 예천 회룡포마을이 대표적이다. 

예천 회룡포는 명승 제16호로 지정된 곳으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350도쯤 휘감아 흐르는 마을이다. 나머지 10도는 백화산 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거인이 아슬아슬한 그 부위를 한 삽 크게 떠내면 영락없이 섬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육지와 연결된 곳의 너비가 약 80m밖에 되지 않는다. 그 좁은 면적에 도로를 놓아 어렵사리 회룡포마을로 들고난다. 

회룡포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내성천 건너편 비룡산 중턱에 자리한 ‘회룡대’가 그곳이다. 구절양장처럼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달리면 장안사에 이른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200m 정도 산길을 오르면 회룡대에 닿는다. 예천을 대표하는 명승지인 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짧은 산길 구간에 사랑의 자물쇠, 소원나무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를 이어 전망대인 회룡대가 자리한다. 

맑은 물과 백사장, 주변을 둘러싼 높고 낮은 산과 너른 들판, 강 위에 뜬 섬과 같은 회룡포 마을이 한눈에 조망된다. 드론을 통해 하늘에서 보는 듯한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잔디처럼 푸른 벼가 머리를 치켜든 채 하늘바라기를 하고 반듯반듯한 논은 손바느질을 해놓은 밥상보처럼 정겹다. 논 앞에는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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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마을과 연결된 뿅뿅다리



뿅뿅다리 건너 한적한 마을 속으로

예부터 회룡포에 터를 잡은 이는 의성군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였다. 일가의 식솔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사람들은 이곳을 ‘의성포’라 불렀다. 연세 많은 어른이 회룡포보다 의성포가 친숙하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15년 전부터 의성포를 회룡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이곳이 의성군에 있는 지명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회룡포라 고쳤다고 한다.

회룡포 마을에 차를 타고 들어가려면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경진교를 지나 동소리길로 진입해 9km를 더 달려야 한다. 하지만 걸어가는 길은 매우 간단하다. 회룡대를 내려와서 백사장에 놓인 뿅뿅다리를 건너면 된다. 뿅뿅다리는 건설 공사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강철판을 이용해 만든 다리다. 마을 사람들은 구멍 사이로 물이 퐁퐁 솟는다고 하여 퐁퐁다리라 불렀으나, 1998년에 언론에서 뿅뿅으로 잘못 보도가 나간 뒤 뿅뿅다리로 불리게 되었다. 

뿅뿅다리는 흔들다리처럼 아래위로 가볍게 흔들린다. 그런 탓에 약간 어질어질하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울렁울렁하는 게 재미있다. 강물은 투명하리만큼 깨끗하고 바닥은 하얀 모래로 가득하다. 바지를 걷으면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낮다. 해 질 녘 뿅뿅다리에 걸터앉아 강물에 발을 담그거나, 부드러운 모래로 채워진 백사장을 여유롭게 거닌다면 더 부러울 게 없겠다. 

회룡포마을은 주말을 제외하면 한적하고 조용한 편이다. 호젓한 기분까지 들 정도이니 외딴섬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한갓지다 보니 6·25전쟁 때도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더불어 이곳에는 마을 외곽을 따라 걷는 올레길이 조성돼 있다. 전망대에서 보던 회룡포마을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분과 평화로운 강변마을의 정취가 온몸에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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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마을 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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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초간정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쉼표를 찍다

회룡포마을을 뒤로하고 차로 30분 여분을 달려 초간정에 닿는다. 한적한 정자에 불과했던 이곳이 요즘 핫한 여행지가 되었다. 지난해 주말 사람들의 시선을 TV 화면 속으로 이끌었던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촬영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선 한국의 아름다운 정자를 포함한 우리 고유의 정원 형태인 원림이 자주 등장하였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던 장소는 강가에 위치한 안동의 고산정이었다. “나랑 합시다. 러브”라는 명대사를 남긴 곳 역시 안동의 만휴정이었다. 또 여주인공의 집으로 등장한 함양의 정여창 고택과 예천의 초간정은 고택의 기품과 정자의 운치를 한껏 뽐내기에 충분하였다. 그중 예천에 자리한 초간정은 여주인공 애신(김태리 분)이 글을 읽거나 수를 놓으며 소일하던 곳으로 등장하였다.

물이 좋은 고장답게 초간정은 개울가에 자리한다. 조선 중기 사간을 지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이 1582년에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그는 오늘의 백과사전 격인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한 인물이다. 현존하는 건물은 1870년에 중창한 것이다.

계곡물이 흐르는 높은 언덕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정자의 모습은 비현실적인 풍경처럼 여겨진다. 한껏 치켜 올라간 처마는 비상하는 새처럼 우아하고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난간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였다. 울창한 소나무들과 기묘한 바위들도 초간정이 뿜어내는 비경에 한몫을 더하니 아득한 풍광이 실로 웅숭깊다. 

개울을 건너 정자에 이른다. 이전과 다른 별세상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다나한 한옥에서 운치와 기품이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것은 서론에 불과하다. 초간정의 진면목은 정자에 올라서야,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아봐야 알 수 있다. 세상 시름을 잊게 되는 무념무상의 순간이다. 

정자에선 세 가지 오브제가 조화미를 뽐낸다. 난간과 기둥은 액자 틀이 되고 그 안에 노거송과 개울, 그리고 괴이한 기암들이 뒤섞여 조화를 이룬다. 모두 자연이 빚은 작품이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누군가가 계획을 한듯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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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뒤로 저무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