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史물

신규식의 교육과 독립

신규식의 교육과 독립


글 독립기념관 자료부



  신규식의 교육과 독립



敎育救國汕盧 

申圭植 題贈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자.

산로 신규식 드림


신규식(申圭植, 1880~1922)은 1909년 중동학교 제3대 교장시절 유묵을 남겼다. 유묵은 1995년 그의 손녀사위 김준엽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 신규식은 1905년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음독자살을 꾀하다가 시신경을 다쳐 오른쪽 눈이 흘겨보는 것처럼 되자 ‘예관(?觀)’이라는 호를 지어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산로(汕盧)’라는 호를 쓰고 있다. 

신규식은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를 졸업하고 구한국 군인의 신분으로 무력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무엇보다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을 중시했다.1909년 3월부터 중동야학교(中東夜學校, 중동학교의 전신)의 제3대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중국 망명 후에는 1913년 상하이에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고, 청년들이 중국과 구미의 학교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등 독립운동의 중추가 될 인재를 키우고자 했다.

이 유묵은 신규식의 사위 민필호를 거쳐 손녀사위 김준엽에게 전해진 것이다. 민필호는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규식의 도움을 받아 박달학원 등에서공부했다. 신규식의 비서로 활동하면서 신규식의 외동딸 신명호와 결혼했다. 1940년 5월부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판공실장으로 활동했으며,그의 장녀인 민영주도 판공실에서 근무했다. 

학병이던 김준엽은 일본군부대를 탈출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왔다. 1945년 4월 시안에서 한국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의 부관으로 미국의 전략첩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의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때 이범석의 비서로 제2지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민영주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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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의 유묵 44.4×46.8 

김준엽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