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세계사

노동자, 역사의 주인공이 되다

프랑스 2월 혁명

INPUT SUBJECT
    


글 고종환 아주대학교 외래교수

  

노동자, 역사의 주인공이 되다

프랑스 2월 혁명




화가 오노레 도미에는 19세기 프랑스를 살았다. 이 시기 프랑스는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큰 격변을 겪고 있었으므로, 그가 풍자화를 그리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대개의 풍자화가 그러하듯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에도 시대를 향한 냉소와 비판이 있다. 동시에 혁명의 주체가 되는 소시민들을 따뜻하게 응시했다. 그의 풍자화가 특별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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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기  1860,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필립스 컬렉션, 워싱턴DC




19세기 프랑스 사회와 풍자화

오노레 도미에는 프랑스 풍자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삼등열차>가 있다. 그는 1830년 잡지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 창간에 관여하고 그 지면에 풍자만화를 게재하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국왕 루이 필립을 비판하는 정치만화를 기고하였다가 6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는데, 2개월은 감옥에서 보내고 나머지 4개월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오노레 도미에는 풍자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당국은 모든 신문과 잡지에 도미에의 정치풍자 캐리커처를 전면 금지했다.

풍자화의 전통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정치 풍자화가 미술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오노레 도미에가 활발히 활동했던 19세기 프랑스에서였다. 19세기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이자 신문과 잡지의 나라였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을 빠르게 얻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읽었다. 게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이어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등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었으니, 풍자화의 발전은 당연한 일이었다.


프랑스 2월 혁명은 어떻게 유럽을 바꿨나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를 간 사이 프랑스에 맞서던 몇몇 나라들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모여 ‘빈 체제’를 결성한다. 체제의 핵심은 유럽에서 시민들이 주도하는 자유주의를 허용하지 말고 절대왕정을 유지하자는 것. 그러나 이들의 약속은 유럽 전역에 흐르는 혁명의 물줄기를 거스를 순 없었다.

1830년 7월 혁명으로 왕이 된 루이 필립은 권력의 정점을 맛본 뒤 자신을 권좌에 올려준 시민들의 열망을 꺾고 다시 왕정복고로 회귀하고자 했다. 크게 실망한 프랑스 민중들은 루이 필립에 대항하는 새로운 혁명을 시도하는데, 그것이 바로 1948년 일어난 2월 혁명이다.

가장 먼저 루이 필립의 입헌군주제에 대해 프랑스 노동자 계급이 강한 저항을 보였다. 저항은 계급투쟁 성격의 노동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여기에 산업자본가들도 합세해 공정한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며 나섰다. 2월 혁명의 시작이었다. 결국 루이 필립은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했다. 시민의 힘으로 왕이 되었던 그는 다시 시민 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또 혁명 후 보통선거 제도가 도입돼 노동자와 농민 계층의 남성도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

2월 혁명의 가장 큰 의미는 유럽 자유주의 혁명의 신호탄이 됐다는 점이다. 같은 해 3월, 오스트리아에서 빈 폭동이 발생해 왕궁과 국회가 공격당했고, 프로이센에서도 전국적 형태를 띤 혁명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발생하여 새로운 공화국 설립까지 이어졌으나 오스트리아의 개입으로 진압되었다. 마찬가지로 동유럽에서도 자유주의 및 민족주의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는데, 특히 헝가리가 가장 거셌다.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헝가리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혁명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1849년 독립을 쟁취한다.

이처럼 프랑스 2월 혁명은 프랑스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강대국의 억압 아래 놓여 독립을 염원했던 동유럽 국가들에까지 혁명의 단초를 제공했다.


노동자를 보는 오노레 도미에의 눈

오노레 도미에는 1860년경 52세의 나이에 <봉기>를 완성했다. 이는 그가 중년에 겪었던 1948년 2월 혁명을 회상하며 그린 것이다. <봉기>를 보면 연상되는 그림이 있다. 바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들라크루아가 투사적인 여인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도미에는 평범하고 가난한 소시민을 앞세웠다. 꼬질꼬질한 흰 옷과 모자, 다소 겁에 질린 표정. 불끈 주먹을 쥔 오른손을 위로 쳐든 사나이는 폭력적이라기보다 마치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사나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시위대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일까? 그는 그저 가난한 노동자였다.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 그림 <봉기>에는 이들 노동자를 향한 도미에의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은 말한다. 이제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고.





고종환

한국 프랑스문화학회의 재무이사이자, 아주대학교와 경상대학교 외래교수. 프랑스 문화와 예술, 서양연극사, 광고이미지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한권으로 읽는 연극의 역사』와 『오페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 『글로벌 다문화교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