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찾은 오늘

실천의 힘, 길영희

실천의 힘, 길영희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실천의 힘, 길영희




독립운동가의 삶이란 대개 고단하고 힘들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길영희 선생의 일화를 듣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그가 순탄하게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철학을 삶으로 실천했다는 것. 그리고 후학들에게 삶의 성취를 남겨주었다는 것. 이 정도면 꽤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과 일치한 삶을 살다

▲ 독립운동가·교육자 길영희 ▲ 1900년 평안북도 희천 출생 ▲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의학전문학교 입학 ▲ 1919년 3·1 만세운동에 학생 대표로 참여하다 투옥 ▲ 3·1 만세운동을 이유로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퇴학. 배재고등보통학교 편입 ▲ 1929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졸업 ▲ 3·1 만세운동 참여 이력 때문에 공립학교에서 임용 거절. 배제고등보통학교와 경신학교 교사로 부임 ▲ 1938년 인천에 ‘후생농장’ 건설.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습회를 여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투신 ▲ 1954년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설립. 교장 겸임 ▲ 1962년 정년퇴임 후 충청남도 덕산에 가르실 농민학교 설립 ▲ 1984년 3월 1일 사망


3·1운동·안창호·교육

이 세 개의 단어는 길영희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학생대표로 3·1운동에 참여한 이력은 평생 그를 쫓아다녔다. 일제강점기에는 사회생활조차 힘들 정도로 큰 압박이 되었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취업도 어려웠다. 그러나 길영희는 3·1운동에 참여한 일을 결코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외려 독립의 의지를 강하게 북돋을 뿐이었다. 창씨개명에 대한 압력 또한 끝까지 견뎌냈다.길영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안창호 선생이다. 그는 안창호의 가르침에 따라 독립운동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유한흥국(流汗興國), 즉 땀 흘려 일하여 나라를 일으키자는 교육 목표를 세웠다. 후생농장을 열어 성인 교육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도 민족교육에 전념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4년 설립된 제물포 고등학교는 이러한 노력과 철학의 총체이다. 길영희는 초대교장으로 취임한 뒤 다시금 자신의 교육철학을 되새겼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식은 민족의 소금”

제물포 고등학교의 교훈(校訓)이었다. 학교는 대한민국 최초 무감독 시험을 시행했다. 길영희는 유한흥국의 교육목표에 따라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는 직접 벽돌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 철학에 모자람 없는 삶을 살았던 셈이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지금도 제물포 고등학교에서는 무감독 시험을 치른다. 이때 학생들은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라는 선언을 한다. 1956년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길영희는 철학을 생각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삶으로 실천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그는 ‘교육’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때부터 민족교육에 모든 것을 내던졌다. 물론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 지식을 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길영희는 땀 흘려 일해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실천의 힘’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냉정히 말해 세상에 해내지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마라톤을 예로 들어보자. 42.195㎞의 거리를 계속 달려야 끝이 나는 운동, 마라톤. 전문 마라토너의 경우 완주를 위해 2시간 내내 달려야만 한다. 거꾸로 말하면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저 달려서 골인 지점에 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마라톤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과제와 도전들은 생각보다 쉽다. 원리나 기술은 앞서 도전했던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 여기엔 고통이 수반된다. 고통을 받아들이겠다는 단단한 마음만 있다면 삶에서 어려운 일은 없다.


길영희를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삶이 그랬다. 옳은 길이라는 믿음만으로 ‘그냥’ 했다.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각오가 선 다음에 남은 것은 실천뿐. 중요한 것은 이 실천이 교훈이 되어 후대에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제물포 고등학교에서 처음 시작한 무감독 시험이 60년의 전통이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철학이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문화와 정신이 되어 수십 년을 이어왔다. 어쩌면 인생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쉬운 지도 모르겠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