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당진을 가다 가을에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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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당진을 가다 가을에 닿다

-충청남도 당진-



가을이 깊었다. 충청남도 당진은 포구·산·바다·섬을 모두 가지고 있어 가을의 면면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여행지다. 어디 자연뿐이랴. 최초로 학생만세운동이 일어난 곳도 당진이고, 한국 천주교가 뿌리내린 곳도 바로 당진이다. 어쩌면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당진의 또 다른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다시 당진으로 간다.



              


대호방조제 옆으로 펼쳐진 개펄과 습지


         

독립운동가 심훈 선생의 발자취

충남 여행은 서해안고속국도 서해대교를 지나 송악나들목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북부 해안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면 필경사를 알리는 입간판이 나타난다. 필경사는 우리나라 농촌계몽소설의 대표작 『상록수』를 쓴 심훈(1901~1936) 선생의 옛집이다. 송악면 부곡리 상록초등학교 뒤편에 있다. 1933년 심훈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당진으로 내려와 이듬해 필경사를 지었다. 그는 이곳에서 한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여러 작품을 썼다. 초가로 만들어진 가옥 앞에는 심훈의 일대기와 손때 묻은 원고·호적·신문원고·사진·책상 등이 전시된 기념관이 있다. 앞뜰에는 ‘그날이 오면’ 시비(詩碑)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중략)…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은 농촌계몽운동의 하나인 브나로드 운동에도 참여해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 브나로드(v narod)는 러시아어로 ‘민중 속으로 가자’는 의미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지식인들이 주로 사용했다. 그들 역시 민중의 의식을 깨우쳐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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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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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목마을 앞바다

   


맛과 멋이 있는 가을 포구

아산만을 끼고 있는 38번 국도는 당진 끝머리 도비도를 지나 서산으로 내닫는다. 국도 주변으로 포구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부곡공단 철강단지가 거대한 위용을 뽐낸다.공단 우측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로 갔다. 한진포구다. 30여 년 전만 해도 당진 쌀을 실은 70~80톤 규모의 대형어선이 정박했던 곳이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포구 앞 개펄 밭이 제법 넓다. 한때 바지락·피뿔고등·박하지게·낙지·준치·민어·삼치·숭어·꽃게 등 해산물이 지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산만과 삽교천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이 또한 옛일이 돼버렸다. 포구에는 몇 척의 어선만이 보인다. 그 앞에 서니 감회가 남다르다.

푸른 바다가 손짓하고 서해대교의 대형 주탑 2개가 아득하게 보인다. 한진포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휴양공원을 둔 안섬포구가 나타난다. 안섬은 원래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됐다. 이곳에서는 돌아오는 봄마다 어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안섬당굿(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이 열린다. 약 350년 전부터 해왔다고 하니, 마을의 역사도 꽤 깊은 모양이다. 안섬 앞에도 개펄이 있다. 개펄에서 바지락과 조개를 캐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안섬포구와 가깝게 붙어 있는 성구미포구는 청강단지가 확장되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아름다운 포구였다는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성구미 가서 돈 자랑 마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세월은 이렇듯 정겹던 풍경마저지워버렸다. 당진 4경의 하나인 석문방조제길로 간다. 곧게 뻗은 방조제길이 10여 분간 이어진다. 끝머리에 다다르니 작은 포구 하나가 나타난다. 마섬포구다. 마섬포구는 당진의 포구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고 찾는 여행객들이 늘었단다. 넓고 푸른 서해를 감상할 수 있는 데다가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다. 석문방조제를 지나면 장고항과 용무치포구가 있다. 왜목항도 코앞이다. 장고항은 포구의 모습이 장고를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실치 주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장고항 앞 용무치에 개펄 체험장이 있다. 호미로 벌을 조금만 뒤져도 조약돌 같은 바지락과 조개류가 올라온다. 왜목마을에서는 해수욕과 일출, 일몰을 모두 즐길 수 있다. 특히 마을 뒤편에 있는 석문산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은 더욱 입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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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지면 천의리는 4·4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당진을 수놓았던 태극기 행렬

왜목마을 앞을 지난 38번 국도는 대호방조제로 이어진다. 방조제 앞 간척지는 드넓은 습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계의 보고다. 방조제 끝에 도비도, 즉 농어촌휴양단지가 있다. 해수탕·숙박시설·전망대·음식점·산책로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난지도에 가기로 했다. 여객선은 도비도를 출발해 대조도-소조도-비경도-우무도를 거쳐 난지도에 닿는다. 난지도는 큰 섬인 대난지도와 작은 섬 소난지도로 나뉘어 있다.

소난지도는 구한말 을사늑약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대일항쟁을 펼쳤던 곳이다. 1908년 3월 15일 일본군의 대대적인 기습공격으로 100여 명에 이르는 의병들이 이곳에서 전사했다. 섬 동쪽 끝 바닷가에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의병들을 모신 의병총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해상 도서가 항일투쟁의 근거지가 된 것은 소난지도가 유일하다. 그래서 의병항쟁 추모탑을 건립해 그 뜻깊은 역사를 널리 전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의병총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이밖에도 당진 곳곳에서 의병 활동이 일어났다. 면천공립보통학교에서 있었던 3·10 만세운동은 학생 주도로 이루어진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었다.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면천보통초등학교 학생들은 면천면 동문 밖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학교 교문까지 행진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었으니 역사적 의의가 크다. 현재 학교는 사라지고 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탑만이 그날의 상황을 어렴풋이 전하고 있다. 면천 학생들의 항일운동은 4·4 독립만세운동으로의 기폭제가 됐다.

4·4 독립만세운동은 대호지 천의장터에서 일어났다. 남주원·이두하·남계창·남상직·남상락 등 지식인들이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다가 당진으로 귀향하여 독립운동을 이어간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대호지면사무소에 모인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정미면 천의장터까지 걸어갔다. 이인정 대호지면장이 주축이 되어 마을 유림들을 이끌었고,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던 천도교인들까지 합세하면서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때 구속되거나 입건된 애국지사만 200명이 넘었다고 하니 과연 3·1운동의 효시로 꼽힐 만 하다. 그때 사용된 태극기는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 중이다. 1919년 4·4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의 부인이 직접 흰색 명주 천에 색실로 수를 높아 만들었다고 한다.

당진시에서는 대호지 천의장터에서 일어난 4·4 독립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정미면 천의리에 창의사(倡義使)를 짓고 순국한 선열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또 왜경주재소가 있던 자리에는 4·4 독립운동 기념탑과 독립운동가 남상락의 태극기 모형을 제작해 놓았다. 매해 4월 4일에는 기념탑을 중심으로 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열린다. 여전히 당진에서는 해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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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아미미술관



그리고 놓치면 아쉬운 곳들

당진 정미면 안국사지(安國寺址)에는 고려시대 석불 입상 3점(국가지정 보물 100호)과 석탑(국가지정 보물 101호)이 있다. 안국사는 백제 말에 창건돼 고려 때 번성했던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은봉산과 봉화산으로 둘러싸인 그윽한 정취가 일품이다.

당진의 명산인 아미산에 올라보는 것도 좋다. 아미산은 당진 남쪽 면천에 우뚝 솟아 다불산과 몽산으로 양 날개를 펼친 듯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 3개의 산은 아미산 정상을 기준으로 이어져 있어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산 아래에 산의 이름을 딴 아미미술관이 있다. 폐교된 학교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공간이다. 연중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 뒤로는 소나무 숲길이 있고, 너른 잔디운동장까지 갖추고 있어 관람 후 산책이 자연스럽다.

송악읍 기지시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인 기지시 줄다리기가 400여 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에 있는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에서 관련 유물과 역사 기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합덕제는 조선시대 3대 저수지 중 하나로, 당진 6개 마을에 물을 댈 만큼 규모가 크다. 인근에 위치한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은 한국 수리 시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훌륭한 교육시설이다. 당진 사람들이 사용한 농경 기구를 기증받아 전시해놓았고 합덕 방죽의 축조 과정 또한 미니어처로 설명하고 있다.

논 옆으로 뻗은 방죽길은 힐링하기 좋은 산책로다. 당진은 한국 천주교가 처음 뿌리를 내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를 비롯해 최초의 교구청인 신리성지, 순교지인 해미성지와 갈매못성지, 합덕성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솔뫼성지는 수백 년 된 소나무 숲과 김대건 신부의 생가·기념관·피정의 집 등이 있어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장소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