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찾은 오늘

생과 사는
인생의 일면이다

생과 사는 <BR />인생의 일면이다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생과 사는

인생의 일면이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이회영 선생과 그의 가문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내걸었던 그야말로 진정한 ‘명문가’였다. 부와 명예, 편안하고 안락한 일상까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리고 그들이 조국에 바쳤던 ‘모든 것’에는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투신(投身)이란 무엇인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1867년 3월 17일 서울 출생 ▲1896년 항일 의병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삼포농장 경영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이상설 등과 함께 을사늑약 철회 무효화 운동 전개 ▲1910년 만주 망명 ▲1912년 독립군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훗날 신흥무관학교로 개칭) 설립 ▲1918년 광무황제 국외 망명 시도 및 실패 ▲1919년 4월 동생 이시영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회의에 의원으로 참가. 1912년 임정 탈퇴까지 활동 ▲1924년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설립에 참여. 비밀 결사조직 다물단·아나키스트 독립운동 단체 항일구국연맹·흑색공포단 등 조직 및 활동 ▲1932년 11월 일본 경찰에 체포.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

 

이회영과 그 형제들은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백사 이항복의 10대 후손이다. 이들 가문은 8대를 이어 판서를 배출한 명문 중 명문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이회영의 6형제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라가 망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결심에서였다. 우선 재산을 처분했다. 그들은 조선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였는데, 당시 처분한 재산의 금액만 하더라도 6백억 원에 이르렀다. 1910년 12월, 형제들은 식솔 59명과 함께 중국으로 떠났다. 그리고는 처분한 재산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회영의 나이 44살 때의 일이었다.

 

이회영과 형제들에게 ‘투신(投身)’은 삶 자체였다. 독립운동 8년 만에 그 많던 재산은 바닥을 보였고, ‘일주일에 세 번 밥을 하면 운수가 대통한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빈곤에 시달렸다. 형제의 최후는 더욱 참담했다. 6형제 중 5명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회영의 동생 이시영만이 고국으로 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으나, 그나마도 이승만 대통령의 전횡에 반대하며 사임하고 말았다. 조선시대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온 곧고 단단한 절개는 변함없었다.

 

형제의 선택과 죽음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한다. 대개 죽음은 불길한 것, 두려운 것,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삶과 죽음은 하나요, 죽음 그 자체가 삶이니 결코 피할 수가 없다. 이회영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생(生)과 사(死)는 다 같이 인생의 일면인데 사(死)를 두려워해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쯤에서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생이란 삶과 죽음 사이를 이루는 수많은 선택의 총합이다. 그리고 이 선택을 도와주는 길잡이가 바로 ‘죽음’인 것이다. 선택을 앞두고 갈팡질팡하는 중이라면 당장 내일의 죽음을 떠올려 보라. 내가 내일 죽는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을 후회한다면? 혹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질문에 대한 이회영의 답은 명쾌하다.

 

“이루고 못 이루고는 하늘에 맡기고 사명과 의무를 다하려다가 죽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가치 있는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한다. 해야 할 노력을 다했다면 그다음은 하늘에 맡기자. 설사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온전히 투신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회영 선생과 형제들의 삶이 바로 그 증거다. 100여 년 전 나라 잃은 슬픔과 원한을 가슴에 품고 조국 독립에 모든 것을 바쳤던 고고한 뜻과 혼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며 우리에게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비록 눈에 보일 만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사명과 의무를 다한 형제들의 인생은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사이좋게 동행한다.

 


이성주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