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추억

복날의 묘약 삼계탕

복날의 묘약 삼계탕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복날의 묘약

삼계탕

 


삼계탕은 우리나라 전통 보양식이다. 무더위가 찾아듦과 동시에 절로 그 시원한 맛을 찾게 되니, 여름철 삼복더위에 삼계탕 한 그릇 먹지 않고 지나가면 서운하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운 날 뜨거운 음식이라니. 이열치열이라고들 하지만 무더위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삼계탕 국물을 마시며 “시원하다”는 감탄사를 내뱉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런데 왜 하필 삼계탕이었을까? 언제부터 삼계탕은 여름철 대표 보양식이 되었을까?


 

부자에게만 허락된 특별식

복날의 국민 보양식, 삼계탕. 복날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사 먹을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니 국민 보양식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삼계탕 대중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7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삼계탕은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특별 보양식에 가까웠다. 그들은 주로 병을 앓고 난 뒤나 삼복더위에 몸이 쇠약해졌을 때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삼계탕을 먹었다.삼계탕이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은 이유는 닭보다도 ‘인삼’ 때문이었다. 지금은 인삼이 흔하지만, 과거 개성인삼과 고려인삼은 비싸고 드문 약재였다. 약으로나 먹을 뿐이지 음식에 함부로 넣을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대다수의 서민들은 인삼을 넣지 않은 영계백숙으로 몸보신을 했다.삼계탕이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는지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24년, 중추원에서 한국인의 생활풍속을 조사한 자료집에 따르면 여름철 암탉의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국물을 정력 약으로 마시는데 중산층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19세기 말, 사상의학의 대가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에서 ‘소음인의 치료에는 닭과 인삼이 효과가 있다’며 양기(陽氣)를 보충하는 치료 약으로 삼계탕을 처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삼계탕의 뿌리는 다시 18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영조 대 궁중 화가 변상벽이 닭 그림을 그렸다. 부모 닭이 병아리를 거느린다는 뜻의 자웅장추(雌雄將雛) 그림이었다. 그림엔 시 한 수가 같이 적혀 있다.“흰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5덕(德)이 남아 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달여야겠는데,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삼계탕을 ‘신묘한 약’이라 일컬으며 인삼과 백출을 함께 섞으면 기이한 효과가 난다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옛사람들에게 삼계탕은 신비한 힘을 가진 묘약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1970년, 양계산업과 인삼재배기술이 발달하면서 닭과 인삼이 비교적 저렴해진 뒤에야 누구나 삼계탕을 먹을 수 있었다.

 

복날 보양식의 필요충분조건

단지 닭과 인삼이 귀하다는 이유로 삼계탕이 신비한 묘약이라 불렸던 건 아니었다. 삼계탕은 동양 철학과 의학에서 말하는 ‘양’의 기운이 풍부한 음식으로서 기력 보충에 제법 효과가 있었다.삼계탕의 기본 재료는 닭고기. 『주역』에서 닭은 양의 기운이 넘치는 새라고 나온다. 삼계탕을 끓일 때 쓰이는 닭은 그중에서도 어린 ‘영계’로,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에서는 영계가 쇠약해진 양기를 되살린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 때문에 삼계탕을 먹으면 기운 보충뿐만 아니라 마른 사람도 몸에 살이 오르고 피부에 탄력이 생기며 아무리 추운 겨울 날씨에도 추운 줄을 모른다는 것.더군다나 인삼은 몸을 덥혀주는 양의 기운이 강한 약재다. 닭과 인삼이 어울렸으니 양기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지사. 삼계탕이 보양식으로 사랑받는 이유였다.그런데 왜 하필 더운 여름, 복날의 보양식이었을까? 여기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복날은 세상이 양기로 가득 차 있지만, 내면에는 음의 기운이 일어나 양의 기운이 엎드려 숨어버리는 날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복날이라 하는 것인데, 이런 날에 삼계탕을 먹어 음기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매년 돌아오는 복날 이열치열을 이유로 습관처럼 먹었던 삼계탕. 알고 보면 삼계탕은 동양철학과 약식동원의 오묘한 원리가 녹아 있는 과학적인 음식인 셈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파원 활동·출장·연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머물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결과,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음식잡학사전』·『신의 선물 밥』·『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