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산청의 오래된 푸름

산청의 오래된 푸름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산청의 오래된 푸름

-경상남도 산청-

 


산고수청(山高水淸). 유독 산이 높고 물이 맑다고 하여 산청이라 불렸다. 지리산과 황매산의 정기가 흐르고, 경호강이 비껴 달리며 단계천과 덕천강이 만나 남강으로 흘러드니 과연 산과 물의 고장이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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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조망지로 꼽히는 정취암

 

문익점과 성철스님의 산청

먼저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처음 재배한 문익점 면화시배지로 갔다. 공민왕 12년(1363)에 중국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은 귀국길에 면화씨를 가져왔고, 장인 정익천과 함께 이곳에서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 한국의 목화가 시작된 유서 깊은 곳이다. 시배지 옆의 목면시배유지전시관에서 베틀과 물레, 면화의 종류를 비롯해 목화솜에서 씨앗을 빼내고 솜 타기·고치말기·실잣기 등을 거쳐 베틀로 옷감을 짜내는 자세한 공정을 볼 수 있다. 시배유지 안에 문익점 선생의 효행을 기리는 삼우당 효자비와 업적을 기리는 부민각(富民閣)이 있다.

산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은 바로 현대불교의 선승, 성철스님(1912~1993)이다. 시배지에서 약 1㎞가량 떨어진 곳에 성철스님의 생가터(겁외사)가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그였다. 이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는 물질문명이 삶을 옥죄는 현대사회에 깊은 통찰을 던진다. 겁외사(劫外寺)는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절’이란 뜻으로 성철스님의 사상이 잘 드러난다. 대웅전·선방·누각·요사채 등이 가지런히 늘어선 사이로 성철스님의 유품을 모아놓은 포영당(泡影堂), 유학자 아버지의 아호를 딴 율은재(栗隱齋),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전시하고 있는 성철스님기념관이 있다.

 

오래된 마을의 소박한 행복

산청 외곽에 있는 남사예담촌은 고가와 흙담길, 고목이 어우러진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이다. 예담은 ‘옛담’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그 옛날 선비들의 예와 풍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이 담겨 있다.

초가집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달려 나와 방문객을 맞고, 이따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곳. 남사예담촌 구석구석 따뜻함이 묻어난다. 수령 700년을 헤아리는 매화나무 원정매와 630년이 된 감나무, X자로 뻗어 올라간 회화나무 등 다부진 고목들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한다. 흙담길은 회화나무가 장식하고 있다. 고대 주나라 때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고 각 나무에 한 사람씩 앉아 조정 일을 논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학자수 또는 출세수라 불린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냇물(사수당)과 용이 승천했다는 설화가 서린 ‘용소’도 볼만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물레방아와 방앗간은 조상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이외에도 이순신 장군이 묵었던 이사재와 이윤형의 효심을 기리고자 세운 사효재가 있다. 이윤형은 숙종 대의 사람으로 화적의 칼을 몸으로 막아낸 뒤 아버지를 구하고 죽었다고 한다. 사효재 마당에는 500살이 넘은 향나무가 있다.

남사마을에는 도시민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서당체험·전통혼례체험·천연 염색체험·꿀벌치기·민물고기 잡기·굴렁쇠 돌리기·제기차기·돌담길 걷기 등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으로 가득하다. 한옥에서 숙박과 식사도 가능하니 산청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길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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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예담촌의 흙담길

 

구국의 염원이 담긴 편지

마을 뒤쪽으로 유림독립기념관이 있다. 다른 곳에 비하면 인근이 다소 한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을에 독립기념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방문객들이 대다수다.

일제강점기 산청에도 독립운동의 열기는 타올랐다. 이곳 단성면과 신등면 일대에서 특히 거셌다. 오죽했으면 서부 경남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라는 아픈 기록을 갖게 되었을까. 독립운동은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장터에서 주로 일어났는데, 현 단성장터와 단계장터, 산청장터 등지가 대표적이었다. 이밖에 단성공립보통학교(현 단성초등학교)에서도 독립운동이 있었다. 지리산 자락의 대원사와 벽계암은 일본 토벌대와 교전을 벌인 현장으로 유명하다. 신안면 진태마을 출신의 박동의(1867~1908) 대장은 지리산 일대를 넘나들며 수차례 전투를 치렀다. 나중에는 그 범위를 넓혀 하동·함양·합천·거창·진주·구례·광양·남원 등지에서도 일제와 맞섰다. 오부면 오부마을 출신의 민용호(1869~1922) 대장 또한 지리산을 넘어 경기도·강원도·만주까지 올라가 의병 활동을 했다. 금서면 특리에 민용호 대장이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유림독립기념관에는 고문 체험실을 비롯해 산청 관내 독립운동가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파리장서 동판 모형이나 파리장서의 의의 등 유림의 독립운동 또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파리장서운동은 산청 단성면 출신의 면우 곽종석(1846~1919) 선생과 유림 대표 137인이 이끌었다. 그들은 구국의 염원을 담아 장서(藏書)를 쓰고 김창숙 등 10명이 중국 상하이에서 편지를 3개 국어로 번역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평화회의장으로 보냈다. 비록 그 염원은 회의장에 완전히 전달되지 못했지만, 마을 한쪽에 세워진 ‘파리장서기념탑’은 그들의 정신을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기념탑은 민족 암흑기에 파리장서운동에 투신한 유림의 충효 정신을 담아내고자 소나무와 대나무의 형상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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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예담촌에 있는 유림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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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석 선생의 친필편지

 

지리산 기슭에 서린 선비의 노래

남사예담촌에서 지리산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한 쌍의 삼층석탑(보물 제72호, 73호)이 나란한 단속사지를 발견할 수 있다. 단속사(斷俗寺).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뜻이다. 3층 석탑 앞에는 당간지주가 있고,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 정당매가 세월을 견디고 있다.

36시천면 소재지로 간다. 영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잘 알려진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유적지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이곳에는 조식이 후학을 양성했던 산천재(山天齋)와 신도비·조식의 묘소·남명기념관·남명석상을 비롯해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덕천서원(德川書院)이 있다. 산천재는 조식이 61세 때 지리산 자락의 덕산으로 자리를 옮기며 지은 서재인데, 단정하고 아담한 외관에 기둥마다 조식 선생의 시구가 적혀 있다. 서원 한쪽에는 조식의 문집이 보관된 작은 집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그의 묘소가 있다.

덕천강(59번 국도)을 따라 밤머리재를 넘어 산청읍내로 간다. 가는 길에 있는 내원사와 대원사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다. 지리산 품안에 안긴 내원사 한쪽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거울처럼 맑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이 물은 내원사를 지나 그 아래 대포숲과 송정숲에 이른 다음 덕천강과 만난다. 내원사에서 3km 거리, 지리산 자락에 있는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이다. 대원사 위로 열린 계곡길(유평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세신대·용소·무재치기폭포·선녀탕·옥녀탕 등 무더위를 날려줄 볼거리가 가득하다.

 

한의학의 본고장, 산청

산청읍내에서 동쪽 밤머리재를 넘어, 경호강을 뒤로하고 차황면 쪽으로 20여 분쯤 달리다 보면 산청과 합천 경계에 걸쳐 있는 황매산(해발 1,108m)을 발견할 수 있다. 하봉·중봉·상봉 등 세 봉우리가 불쑥 솟은 산 정상은 마치 호수에 매화가 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수중매’라고도 불린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푸른 합천호와 산청땅 차황면의 산과 들, 그리고 아득한 지리산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물 맑고 골 깊은 산청은 한의학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을 위시한 유이태와 초삼 형제는 이곳에서 의술을 펼쳤다. 조선 숙종 때 어의를 지냈던 유이태는 거창에서 태어났지만 외가가 있는 산읍(지금의 산청군 생초면)으로 옮겨와 의술 활동을 했다. 그래서 왕산 필봉 자락 동의보감촌에는 한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의학 전문 박물관인 한의학박물관·한방테마공원·족욕체험장·허준순례길·산청약초관·한방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한방테마공원은 음양오행설과 인체 형상을 바탕으로 꾸며졌다. 돌로 만든 거울 석경과 귀감이 되는 글자를 새긴 바위라는 뜻의 귀감석, 복을 담아내는 솔인 복석정도 볼 수 있다. 넓은 평지 위엔 기(氣) 체험과 명상을 즐길 수 있는 동의전이 우뚝 서 있다.

귀로에는 신등면 댕성산 머리에 올라앉은 정취암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해인사의 말사로 기암절벽과 숲이 둘러싸고 있어 그윽한 기운이 감돈다. 암자 앞으로 펼쳐지는 산천 풍경이 제법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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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이 후학을 길렀던 산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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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촌에 조성된 한방테마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