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세계사

기나긴 독립전쟁의 시작

기나긴 독립전쟁의 시작

글 고종환 아주대학교 외래교수

 

기나긴 독립전쟁의 시작

 


1568년부터 1648년까지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스페인)에맞서 독립전쟁을 펼쳤다. ‘네덜란드 80년 전쟁’이란 또다른 이름처럼 전쟁은 8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마침내네덜란드는 독립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종교와 세금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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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을 파괴하는 칼뱅주의자

(1588, 프란스 호겐베르크(Frans Hogenberg), 국립 포 성 미술관)

 

 

 

네덜란드, 그리고 벨기에의 독립네덜란드 독립

전쟁 당시 북부 7개 주와 남부의 10개 주는 힘을 합쳐 스페인에 대항했다. 북부와 남부의 차이는 종교였는데, 북부에는 주로 개신교도들이 살고 있었던 반면 남부엔 가톨릭 신자가 많았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남부 10개 주는 ‘아라 동맹’을 맺고 철수한다. 그러나 북부 지역의 독립 의지는매우 강력했다. 그들은 1579년 1월 29일, ‘생명·피·물자를 바쳐 권리와 자유를 지킴에 있어 마치 하나의 주가 된 것처럼결합할 것’을 결의하고 더욱 치열한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위트레흐트 동맹(Treaties of Utrecht)이 독립국 네덜란드의 모태가 되었다. 북부의 주들은 동맹을 맺어 끝까지 투쟁한 끝에 ‘독립’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1581년7월에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남부 지역은 여전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전쟁도 지루하리만큼 더디게 이어지고 있었다. 1648년에 이르러서야 ‘베스트팔렌 조약’이 성사되며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국제적인 승인을 얻는다.

남부 지역은 1839년에 정식국가가 됐는데 이 나라가 바로벨기에다.

 

가톨릭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오직 죽음뿐

독립전쟁을 통해 네덜란드가 얻고자 했던 자유에는 종교의자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스페인은 가톨릭을 강요했다. 서기 712년 스페인에 유입된 이슬람은 금세 거의 모든지역을 지배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스페인은 이슬람을 몰아내고자 더욱 순수한 가톨릭을 사수하게 된다. 중세 네덜란드는 칼뱅주의와 개혁교회, 즉 개신교가 성행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북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물리적 탄압을 동원, 자신들이 지배하는 네덜란드에서도 가톨릭으로의 종교적 통일을 강제했다.가톨릭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 신교도에 관용을 주장하는 것 역시 반역으로 간주하였다.

네덜란드 개신교인들이 바란 것은 단지 종교적 자유였다.그러나 16세기 네덜란드를 지배하던 펠리페 2세는 잔인한공포정치를 통해 그들을 강제 굴복시켰다. 설상가상으로종교적 이단 심판까지 도입하려 했다. 강한 탄압은 강한 저항을 부르는 법. 펠리페 2세와 종교탄압에 반발하는 옥외집회가 일어났다. 집회에서 칼뱅파 신교도들은 성상파괴운동을 전개했다. 16세기 판화가 프란스 호겐베르크의 작품 <성상을 파괴하는 칼뱅주의자>에 당시의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며 교회를 장식하고 있던성화와 조각들을 부쉈고, 교회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하얀 회벽만이 남았다. 성상파괴운동이 확대되면서 스페인에대한 네덜란드인의 저항은 점차 무장투쟁으로 번져갔다.

 

알바 공작과 ‘1할 세’

당시 네덜란드에는 중개무역과 모직물 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상공업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칼뱅주의와 개혁교회를지지했다. 노동으로 부를 쌓는 것은 잘못이 아닌 신의 뜻이라는 칼뱅 사상의 내용은 상인들을 경도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같은 시기 펠리페 2세는 전쟁경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상공업자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네덜란드의 상공업자들과 개신교도들은 자치권을 요구하며 스페인 탄압에저항하기 시작한다. 펠리페 2세는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자신의 최측근이자 장수인 알바 공작(Duke of Alba)과 군대를 파견, 네덜란드에 처절한 피바람을 일으켰다.

사실 독립전쟁 초기, 네덜란드는 상당한 고전을 겪고 있었다. 스페인에 대항하려는 세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571년 알바 공작이 스페인 의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할 세’를 실시하자 투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1할세는 모든 판매수익과 토지수익에 1할의 세금을 부과하는세금정책인데, 이 정책이 네덜란드인으로 하여금 참았던화를 폭발케 했다. 네덜란드 안에 있던 가톨릭 신자들마저불만을 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 공작은 무자비한탄압을 이어갔고, 신교들을 비롯한 많은 네덜란드인이 살해 당했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을 더욱 과격하게만들었다.

 


고종환

한국 프랑스문화학회의 재무이사이자, 아주대학교와 경상대학교 외래교수. 프랑스 문화와 예술, 서양연극사, 광고이미지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한권으로 읽는 연극의역사』와 『오페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글로벌 다문화교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