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찾은 오늘

영원한 쾌락과 죽음

영원한 쾌락과 죽음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영원한 쾌락과 죽음

 


목숨을 걸고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義士). 사람들은 이봉창 의사가 독립운동가로서 특별한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평생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이봉창과 그의 삶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나는 그의 위대한 인생관을 보고 감동의 눈물이 벅차오름을 금할 길이 없다”라고.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던 이봉창의 무엇이 김구를 그토록 감동시켰던 것일까?


 

일제강점기 어떤 젊은이의 일생

▲독립운동가 이봉창 ▲1900년 8월 10일 경성 출생 ▲1915년 문창소학교 졸업 ▲경성부 일본인 상점에 취직, 이후 상점 점원과 막노동 전전 ▲1917년 무라타 약국 취직 ▲1918년 철도청 용산철도국 기차 운전 견습생으로 취직 ▲1925년 오사카 도착.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란 이름으로 생활 ▲1928년 히로히토 일왕의 즉위식을 구경하러 교토에 갔다가 한글 편지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체포, 11일간 구류 ▲1931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와 접촉 ▲1932년 1월 8일, 관병식을 참관하고 돌아가던 히로히토 일왕에게 수류탄을 투척 ▲1932년 10월 10일 사형집행. 32세의 나이로 순국

 

이봉창의 약력에서 특별한 것은 없다. 너무나 잘 알려진 수류탄 투척 사건을 제외하면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평범한 청년의 모습이다. 취직을 하고 차별대우와 적은 월급에 분노하고 다시 새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등,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한 방황도 엿보인다. 주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과 공공기관, 회사에서 일했고 마침내 일본인의 양자로 입적되기에 이른다. 그는 일본에서 기노시타 쇼조란 이름으로 생활하며 일본인 행세를 했다. 수준급의 일본어를 구사하고 의식적으로 일본인의 행동을 쫓으며 그들의 습성을 몸에 익혔으니 정말 ‘일본인’과 다름없었다. 상하이로 갈 때도 이봉창은 일본식 이름을 썼다. 그곳에서 이봉창은 일인 인쇄소 점원이자 봉급을 타면 술이나 마시는 건달일 뿐이었다.

이처럼 별 볼 일 없는 일본인 행세를 한 덕분에 이봉창은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질 수 있었다. 아무도 그를 독립운동가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 사람에게 의심을 샀다.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고 일본식 옷을 입고 다니는 이봉창을 ‘왜늙은이’라 부를 정도였다. 1932년 1월 이봉창은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지극히 평범했던, 오히려 일본인이나 건달로 오해를 샀던 젊은이가 의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 죽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

 

이봉창은 김구에게 자신이 상하이로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김구 역시 이봉창의 독립사상과 진심에 큰 감명을 받았다. 제아무리 절절한 진심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죽음을 각오하기란 쉽지 않은 법. 그런 만큼 죽음이 가지는 힘 또한 대단하다.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살아간다. 삶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하나다. 비록 진부한 명언 같을지라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죽음에 구태여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라는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중략)…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니까요.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라고 말했다. 삶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 죽음.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유한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당연한 사실에 두려워하는 대신 능동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자신을 채찍질하고, 죽음을 각오하거나 삶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도전한다. 이봉창도 그랬다. 그저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던 개인이 일왕에게 수류탄을 투척한 의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죽음을 불사른 각오가 있었다. 그만큼 죽음은 강했다. 그가 말한 ‘영원한 쾌락’ 역시 죽음의 다른 이름이었으리라.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