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함성 독립의 희망

한국 독립운동사,
비극과 갈등의 기록

한국 독립운동사,<BR />비극과 갈등의 기록

글 박영규

 

한국독립운동사,

비극과갈등의 기록

 


시베리아에 위치한 아무르 주 스보보드니. 이곳은본래 알렉세예프스크라고 불렸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개칭되었다. 스보보드니는 러시아어로 ‘자유’를 의미했기때문에 1920년대 한국인들에게는 자유시라는 이름이 더익숙했다. 1921년 6월 28일, 스보보드니에서 극동공화국과이르쿠츠크파 독립군이 독립군들을 사살하는 사건이발생한다. 자유시 참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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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 전경

 

 

한국 독립군이 러시아로 향한 이유

1918년 11월, 세계대전에 대한 미국과 독일 간 단독 휴전이 이루어진 이후 1919년부터 파리강화회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동북아시아는 일제의 팽창정책에 의해 분쟁이 계속되는 중이었다.일제는 대륙 진출을 위해 간도참변 및 간도지역 독립군을 상대로 한 청산리전투를 일으켰다. 간도에 있던 우리독립군들은 일제의 초토화 작전에 밀려 러시아 지역으로몸을 피해야 했다. 그들은 러시아로 이동 중 우선 중국 헤이룽장성 밀산에 집결하였다. 밀산에 모인 독립군은 서일과 김좌진이 이끌던 북로군정서를 비롯하여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홍범도의 대한독립군·구춘선의 간도 국민회·김성배의 대한신민회·이범윤의 의군부와 광복단·김국초의 혈성단·최명록의 도독부·김소래의 야단·이규의 대한정의군정사·김백일의 군비단 등 총 12개 집단이었다. 이들은 밀산에서 청산리전투 이후 흩어졌던 독립군을 재조직하였다. 독립군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러시아 혁명정부 간 밀약에 따라 보급을 받기 위해 이듬해 자유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극동공화국이 제공한철도를 타고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서북방으로 갔다. 장거리를 이동한 끝에 아무르 강변의 스보보드니, 즉 자유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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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혁명군정의회 선포문(자유시 군변에 대하여) 자유시 참변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전후 형편과 경과를 밝히고 있다.

 

 

누가 자유시의 독립군을 지휘할 것인가

자유시에는 이미 극동공화국 지역에 머무르던 한인이 독립군을 조직하여 주둔해 있었다. 이들 모두는 고려공산당 소속이었는데 고려공산당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러시아 지역의 독립 세력 중 가장 명망이 높았던 이동휘가 상하이에서 먼저 만든 고려공산당과 그의 라이벌이었던 문창범·여운형이 대한국민의회를 중심으로 만든고려공산당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동휘의 고려공산당을 상하이파, 문창범과 여운형의 고려공산당을 이르쿠츠크파라고 불렀다. 두 파벌은 군대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통수권을 두고 갈등했다. 상하이파의 핵심부대인 니항군을 이끌던 박일리아는 극동공화국 군부와 먼저 접촉했다. 그는 상하이파 인물인 박창은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자유시에 집결한 한인 부대들을 지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르쿠츠크파의 자유대대와 대한국민의회는 그를사령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박창은은 총사령관직을 사임했고, 극동공화국은 다시 상하이파 지지자인 그리고리예프를 연대장, 박일리아를 군정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간도의 독립군 사단인 대한독립군단을 비롯한모든 한인군단에 대한 지휘를 담당토록 한 것이다. 이에자유대대가 끝까지 불응하자 그리고리예프는 자유대대의 장교들을 체포하고 무기를 압수한 뒤 지방수비대로강제 편입시켰다.

고려공산당 파벌 싸움은 상하이파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자유대대의 오하묵과 최고려는 이르쿠츠크에 자리한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국제공산당) 동양비서부를 찾아가서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군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하소연했다. 상하이파가 극동공화국과 친분이 두터웠다면 이르쿠츠크파는 이르쿠츠크 코민테른과 가까웠던 것이다. 이르쿠츠크 코민테른은동양비서부를 통해 임시 고려군정회를 조직하고 군대를내주었다. 고려군정회의 총사령관은 갈란다리시빌리, 부사령관은 오하묵이었다. 군정위원으로는 이르쿠츠크파의 일원인 김하석과 채성룡이 임명됐다. 갈란다리시빌리는 자신이 고려군정회의 총사령관임을 주장하며 극동공화국에 주둔한 모든 한인 부대에 대해 자유시로 출두할것을 명령했다. 대세가 뒤집혔음을 직감한 대한독립군단의 홍범도 등은 자유시로 집결했으나 상하이파 부대를통솔하던 박일리아 등은 응하지 않았다. 이에 갈란다리시빌리는 그리고리예프 군대를 포위하여 압박했고 결국그리고리예프는 투항하고 말았다. 그러나 박일리아는 끝까지 고려군정회의 명령에 불응했다. 이에 갈란다리시빌리는 박일리아의 사할린의용대를 무장해제하기로 결정,공격을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군이 사살되었다. 1천여 명에 이르던 부대원 중 864명이 무장해제 되어 체포됐다. 이후 홍범도·안무·지청천 등이 이끌던 대한독립군단 소속 대원들은 붉은 군대에 편입되어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였으나 무장해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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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표회 분쟁의 건. 조선인 국민대표회에서 개조파와 창조파, 유지파 간의 분쟁을 적은 문건의 일부이다. 총 6면으로 되어있다.

 

 

혼란의 임시정부, 위기의 독립운동

자유시 참변은 한국독립운동사의 가장 뼈아픈 사건 중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로 수천 명의 항일 독립부대가 사라지고, 홍범도와 같은 뛰어난 무장들을 잃었다. 다행히 김좌진·김규식·이범석·김홍일 등은 이만에서 발길을 돌린 덕분에 참변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대한독립군단이 와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독립군단의 총재 서일은 책임을 통감하고 밀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같은 시기,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내부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20년 12월 미국에서 상하이로 밀항하여 취임했는데, 이후 러시아 연해주 동포 사회를 이끌고 있던 이동휘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동휘는 이승만의 외교 중심 독립운동에 반대하며 총리직을 사임했고, 마찬가지로 이승만의 노선에 반대의사를 갖고 있었던 신채호도 임시정부에서 이탈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혼란을 수습하기힘들다고 판단,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임시정부 내의 갈등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21년 임시정부는 레닌으로부터 100만 루블의 군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그중 40만 루블을 수령한 이동휘가 임시정부에 자금을 보내지 않았다. 이에 김구는 레닌의 돈을 수령한 이동휘 일파를 추격하여 김립을 암살하고 이동휘를 포함한 사회주의 세력을 임시정부에서 추방하기에 이른다.1923년 임시정부는 조직 재정비를 목적으로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엔 200여 명의 지역 대표들이 참석하여 임시정부의 존립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크게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창조파는 임시정부의 해체와 재건을 주장했으나 개조파는 임시정부를개혁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를 원했다. 양쪽은 끝내 합의를 보지 못하였고, 내무총장을 맡고 있던 김구는 국민대표회의를 해산시켰다.

이후로도 임시정부는 여러 차례 난관에 부딪쳤다. 미국으로 간 이승만은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탄핵되어 대통령 직에서 내쫓겼다. 박은식이 임시대통령을 맡아 국무령제를 채택, 초대 국무령으로 이상룡이 임명되었으나 내각 형성에 실패하여 사퇴하였다.

임시정부를 이끌던 실질적인 지도자 이동녕이 잠시 국무령을 맡았다가 홍진이 이어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내각 조직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임시정부는 김구에의해 간신히 유지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수립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정부 요인들은 하나 둘 떠나가고, 내각조차 조직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재정 상태까지 최악으로 치달으니 끼니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교 활동도 거의 전무했고, 국내와의 연결망도 무너졌다. 비밀행정조직망 또한 파괴된 상태였다. 이렇듯 1920년대 임시정부는 나날이 쪼그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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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상하이 도착 환영식장(1920.12.28.)

이승만은 1919년 9월 임시정부 대통령에 임명되고 1920년 12월 5일 상하이에 도착했다.

 

 


박영규

1996년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내면서 저술활동을 시작하여. 1998년 중편소설 『식물도감 만드는 시간』으로 문예중앙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문학, 철학, 역사 분야에 걸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역사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