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찾은 오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독립과
여성 인권의 신장을 외치다

일제강점기,대한민국의 독립과 <BR />여성 인권의 신장을 외치다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독립과

여성 인권의 신장을 외치다


독립운동사에서 차미리사에 대한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조명이 박했던 만큼 평가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많다. 미투(Me Too)운동의 열기가 사회 곳곳을 훑고 지나가는 이때 차미리사의 이야기를 한 번 소개 해보고자 한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교육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과 여성 인권 해방에 힘쓴 그녀는 진정한 혁명가였다.


현실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1878년 8월 21일 서울 출생 ▲17세에 결혼하였으나 2년 만에 사별 ▲개신교에 입회하여 미리사(Mellisa)라는 세례명을 받음 ▲1901년 헐버트 선교사의 소개로 중국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1907년 하와이에서 한인 노동자를 위한 사회봉사 활동 전개 ▲1908년 ‘한국부인회’ 결성 ▲평안남도에 ‘대동고아원’ 설립 ▲1912년 귀국 후 배화학당에서 교사 겸 선교사로 활동하며 여성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 ▲1920년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조선여자교육회’ 조직 ▲1934년 재단법인 근화학원 설립(오늘날의 덕성여중·여고·여대의 전신)

 

몰락한 양반가의 귀한 막내딸로 태어나 시집간 지 2년 만에 과부가 된 인생. 여기까지만 보면 박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차미리사의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중국과 미국 유학을 통해 변화된 세상의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빼앗긴 조국·천시 받는 여성·배우지 못한 동포를 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했다. 바로 조선 여성들의 교육을 위한 투신이었다.

 

“조선 여자에게는 지금 무엇보다도 직업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인해방이니 가정개량이니 하지만 다 제 손으로 제 밥을 찾기 전에는해결이 아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차미리사는 교육자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인생은 순탄치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설립한 학교인 근화학원(1934년 차미리사가 설립한 학교로, 근화(槿花)는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의미한다)이라는 이름에서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차미리사는 총독부로부터 압력을 받았고, 결국 학교 이름도 덕성(德成)으로 바꿨다. 종국에 가서는 창씨개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갖은 협박에 시달렸고 재단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독립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교육운동에 매진한 차미리사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제 손으로 제 밥을 찾는다는 것

차미리사가 조선여자교육회 설립과 함께 주장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여성들에 대한 실업교육이었다. 고매한 이상을 설파한 여권운동도 따지고 보면 남녀 간의 권력구도, 즉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남녀의 권력차이에서 나온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 단순히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을 하고,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고 익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지금 터져 나오고 있는 미투 운동을 두고 포스트 가부장제로 나아가는 진통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그동안 억눌려 왔던 여성 차별과 성적 억압의 폭발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본질은 바로 갑을관계에서 나오는 ‘권력의 횡포’로 볼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양성평등의 시대란 말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있다는 건 모두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여자는 거래의 대상도 남자의 부속품도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남녀 임금 차이가 존재하는 게 이 사회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사원을 두고 ‘직장의 꽃’이라 불렀고, 일부 직종에서는 여성들에게만 유니폼을 입혔던 것이 이 나라다.

 

사회적 인식의 틀이 변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남성이나 사회 구성원들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교육시키는 것도 있지만, 세상이 바뀐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여성이 경제적 주체로 우뚝 서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순간 남녀 간의 권력관계는 균형을 이룰 것이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