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발자취

그 시절 동포의 흔적을 따라서

독립의 발자취<BR />

글 편집실



독립운동의 흔적을 좇아, 그 시절 독립운동이 가열하게 이루어지던 지역으로 떠난 이가 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살던 곳을 떠나 지역을 이동하고 또 그곳에서 평생을 일구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 그 후손의 후손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해온 사람이 있다. 역사에 관심을 갖던 중 필연처럼 시작하게 된 일, 역사적 사료 수집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류은규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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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규 사진작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아 나선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 공부를 시작해 어언 40년이 넘은 것 같네요. 학창 시절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터라, 사진을 전공한 뒤에는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도 춘천교도소 촬영을 시작으로, 1993년에는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 호기심은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어떻게 살고 있나’, ‘아직 생존해계신 분들은 있을까’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역사 공부를 새로 하게 되었고. 이후 28년간 중국을 오가며 관련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독립투사들에 초점을 두었던 촬영 초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처음 항일독립투사들의 흔적과 마주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학교에서 많이 배웠지만, 교과서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부분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로, 또 끊임없는 친일파들의 감시로 인해 숨어 살다 보니 광복된 지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처해 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에 대해서 누군가는 기록해놔야 된다고 생각했고, 사진작가인 내가 그 책임을 맡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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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 평방 안무장군 동생 안긍설


특별히 중국 동포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리들은 물론 오늘날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마저도 그들 선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에 건너갔을 때 재중동포에게 “당신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어디에서부터 이주해 여기에 정착하셨습니까”라고 물어봤지만, 그네들은 모른다고 답하기 일쑤였습니다. 현지에서 역사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마저도 같은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 ‘내가 그 뿌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옛날 사진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동포들의 생활상을 수집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요?

자료를 찾아 헤매던 초반에는 “한국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해받지 못한 사례도 수두룩했습니다.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등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다 보니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도 수월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0~20년이 지나니 진실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차츰 이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간에 믿음이 생기다 보니 이제는 오해 대신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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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 하동 김규식 딸 김현태(좌) / 흑룡강성 하얼빈 소래 김중건 딸 김정란(우)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자료 수집 활동을 하시나요? 

현지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자료 수집 초반에는 개인적으로 가정에 방문해서 구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사진관에서 직접 필름을 구할 수 있게 되어 시간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사진관은 모든 생활상들이 기록되어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돈을 지불하고 필름을 사거나 은퇴할 준비를 하는 분들에게 자료를 제공받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검증을 받는 게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역사적인 부분은 역사학자들과 함께 풀어냈고, 1995년부터 2000년대까지는 민족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직접 검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일단 방대하게 넓은 지역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관광비자만으로는 중국에 오래 있기 힘들어 중국 내 대학교에서 교수 일을 하며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는 하얼빈에서, 2000년대부터는 길림성 연변대학교에 있으면서 약 5만 장이라는 광범위한 자료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2009년부터는 한국에 들어와 1년에 3~4개월 정도만 중국에 있었으며,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 머무르면서, 그간 구해놓은 필름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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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밀산(좌) / 1935년 룡정(우)

최근 개최한 간도사진관 전시 취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이번에 전시한 〈간도사진관〉의 사진들을 보면 독립운동 모습과 더불어 동포들의 생활상이나 대학운동 모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중국 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비단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동포로서의 의미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실상 아직까지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이 현재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정체성과 대하는 자세는 물론 호칭에 대한 마찰 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과거 민족의 발자취를 콘셉트로 전시를 개최했다면, 최근에는 동포들의 순수한 생활상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번 〈간도사진관〉 또한 사회학적으로 재해석한 부분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반응도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스토리텔링 하고자 하는 자료가 많은 만큼, 시간을 갖고 120년에 대한 역사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저의 모든 활동은 결코 유명해지고자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이 모든 활동들이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훗날의 기록을 위해 꾸준히 작업하는 것뿐, 저의 모든 활동은 나중을 위한 과정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중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현재 우리 사회는 중국 동포(조선족)를 멸시하는 분위기가 짙습니다. 사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이민이 많은 나라에 속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이동했던 지역이 중국입니다. 당시 그곳에서의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나라의 독립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족의 이주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만 말고, 우리네 삶의 일부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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