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사적지

제주 해녀 항쟁 시위 현장

독립운동 사적지<BR />

정리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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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화·김옥련·부덕량 흉상


제주도해녀조합 수탈에 대항한 제주 해녀들

1932년 1월 7일 부춘화(25세)·김옥련(23세)·부덕량(22세) 등이 주도하여 벌인 1차 시위가 세화 오일장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구좌면 해녀조합 지부장(구좌면장 겸임)이 해녀 대표들의 요구사항을 접수하고, 1월 12일 구좌면을 방문하는 제주도사에게 알려 해결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에 1월 12일 구좌면 종달리·하도리·세화리 해녀들과 정의면 오조리 해녀 등 700여 명이 연두막동산에 집결하여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두막동산에 집결한 해녀들은 호미와 빗창을 휘두르고 만세를 부르며 세화 오일장으로 행진하였다. 세화 오일장에 도착한 해녀들은 제주도해녀조합에 대한 불평과 함께 죽음으로써 항쟁하자는 다짐을 했다.     

구좌면과 정의면 각 리별로 20여 명의 해녀 대표를 선출하고 요구 조건을 결정할 즈음, 정찰 중이던 해녀로부터 구좌면사무소를 방문했던 제주도사가 막 돌아가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윽고 시위대는 즉시 그곳으로 몰려가 차를 타려고 하는 제주도사를 포위했다. 해녀 대표와 제주도사의 면담 결과, 제주도사는 해녀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정 판매 폐지, 경쟁 입찰에 의한 공동판매 부활, 미성년자와 40세 이상 해녀조합비 면제 등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었다. 이날 연두막동산에 집결하여 이루어진 해녀 시위는 규모가 가장 컸던 만큼 제주도사와의 담판을 통해 요구 조건을 일부나마 관철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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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막동산

1932년 1월 12일 제주도 구좌면과 정의면 지역 해녀들이 제주도해녀조합의 수탈에 대항하며 일으킨 2차 제주 해녀 항쟁 참가자들이 집결해 시위를 벌였던 곳이다. 현재 제주해녀항쟁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해녀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또 1998년 8월 15일 건립한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우측에는 ‘부춘화·김옥련·부덕량’ 3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위치 고증 : 『조선일보』 1932년 1월 24일자에 ‘세화경찰관주재소 동쪽 2정쯤 되는 네거리에 종달, 오조 해녀 대략 300명과 하도 해녀 대략 300명, 세화 해녀 40명이 일시에 동남북으로 모여’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세화경찰관주재소 동쪽 2정쯤 되는 네거리가 현재 연두막동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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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화의 집

1932년 1월 제주 해녀 항쟁 당시 해녀 대표로 구좌지역 해녀들의 권익 향상과 생존권 투쟁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부춘화가 살았던 곳으로, 하도리마을 내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지붕과 문 등이 개량되었다.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문주란로 26 

위치 고증 : 제주 구좌읍사무소를 방문하여 토지대장을 확인하고,  위치를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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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오일장 터 

1932년 1월 7일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 오일장에 모인 구좌면 하도리·연평리(우도)·세화리 해녀들이 제주도 해녀조합의 횡포에 대항해 해녀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곳이다. 현재 과거 장터의 모습은 없어지고 공터로 변해있다.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457-1

위치 고증 : 『조선일보』 1932년 1월 24일자 기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세화오일장 터’ 표지석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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