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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단양팔경
단양팔경 외전

다시 쓰는 단양팔경<BR />단양팔경 외전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다시 쓰는 단양팔경

단양팔경 외전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도다.”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이다. 여행도 그렇다. 어제까지는 핫스폿이었던 곳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오던 명승지인 단양팔경도 다시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단양팔경 외전(外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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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을 활공하는 패러글라이딩



새처럼 하늘을 나는 꿈이 현실로

단양에는 남한강을 따라 수려한 경치 여덟 곳을 일컫는 ‘단양팔경’이 있다. 그 가운데 제1경은 고즈넉한 남한강에 홀연히 솟은 도담삼봉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할 때 태조 이성계를 도왔던 정도전(1342~1398)은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을 만큼 도담삼봉을 아끼고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삼봉 중 가운데 있는 봉우리에 정자를 짓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우열을 따질 수 없지만 이 같은 이유로 도담삼봉을 단양팔경의 으뜸으로 꼽는다. 

그 뒤를 이어 문처럼 생긴 석문, 충주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구담봉과 옥순봉, 그리고 선암계곡을 따라 이어진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이 꼬리를 물고 경치를 뽐낸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던가. 단양팔경도 시대에 따라 외전(外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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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산’



단양팔경 외전의 으뜸, 하늘에서 만나다
그 으뜸은 해발 600m에 자리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달리면 하늘과 맞닿은 듯한 공터에 이른다. 누군가 이곳의 이름을 묻는다면 하늘공원이라 불러도 될 만큼 시야가 탁 트였다. 공터 끝자락엔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어 가장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단양의 풍경은 거침없고 막힘없다. 모두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가도 “뛰어!” 하는 구령에 귀를 쫑긋 세운다. 소리의 진원지에서는 달팽이처럼 등짐을 짊어지고 뜀박질하는 패러글라이더가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외마디 비명 “으악!”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날아간 이후 활공장엔 다시 평온이 깃든다. 
‘새처럼 나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패러글라이딩 체험에 도전한다. 안전교육을 받고 교관의 지시에 따라 활주로 앞에 선다. 구경할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긴장감에 손에 땀이 마르지 않는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긴장감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교관이 기념사진을 찍어주는데 한쪽 입꼬리만 애써 끌어올려 사진을 찍는다. 
드디어 이륙 준비가 끝났다. 등 뒤에 바짝 달라붙은 교관이 소리친다. 그 목소리는 칼날보다 예리하고 비수보다 날카로워 귓불을 찢을 듯 후벼 판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하늘이다. 하늘을 유영하듯 날고 있는 내 모습에 감격 또 감격한다. 겁에 질려 쫄깃쫄깃하던 심장은 짜릿한 쾌감으로 변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유쾌하다 것을, 바람을 가르는 것은 한없이 상쾌하다는 것을. 내 인생 최초의 비행은 성공이다. 
패러글라이딩 활공 시간은 보통 15분 안팎이다. 숙련된 교관이 등 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조작해주기 때문에 체험자는 그냥 믿고 맡기면 된다. 적잖은 비용이라 부담스럽지만 평생에 한 번은 체험해볼 만하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한편에 있는 ‘카페 산’이 단양의 핫플레이스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카페라 불리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카페임이 분명하다. 커피는 물론이고 직접 구워내는 빵까지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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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하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단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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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을 따라 하강하는 짚 와이어



하늘에서 보는 특별한 풍경과 짜릿함
단양팔경 외전 제2경은 만천하 스카이워크다. 단양강 수면에서 80~90m 지점에 25m 높이로 세워진 전망대인데 이곳에서 보는 풍광이 압도적이다.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 하늘로 솟구친 전망대를 향해 한발 한발 오르면 발아래 전망이 조금씩 넓어진다. 전망대 꼭짓점에 이르면 허공을 향해 돌출한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 바닥은 천 길 낭떠러지가 고스란히 보이도록 고강도 삼중 투명 강화유리를 설치해 놓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늘을 걷는 기분이다. 발끝에서부터 찌릿하게 전해지는 야릇한 느낌. 싫지만 미워할 수 없고, 두렵지만 외면할 수 없다.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았지만 산 정상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장쾌한 풍경이다. 손에 잡힐 것 같은 단양 읍내와 멀리 소백산까지 또렷하게 조망된다. 
만천하 스카이워크 아래에 짚 와이어가 있다. 과거 호주와 뉴질랜드 개척시대에 음식물이나 우편물 등을 전달하려고 설치했던 것이 오늘에 와서는 스릴을 맛보는 익스트림 레포츠로 자리 잡았다. 짚 와이어는 산기슭을 따라 980m 구간을 최고 속도 약 80km로 하강한다. 소요시간은 1분 남짓으로 눈 깜짝할 사이다. 1코스는 만학천봉과 환승장을, 2코스는 환승장과 주차장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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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강 수면에서 높이 20m 지점에 설치된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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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개역사문화길의 핵심 구간인 잔도길

트레킹 그 이상의 감동
중국의 항산 절벽에 설치된 가교를 뜻하는 ‘잔도’가 단양에도 있다. 단양강 잔도가 그것인데 단양팔경 외전 중 제3경이다. 공식 명칭은 ‘수양개역사문화길’이지만 전체 구간에서 백미인 이곳을 ‘잔도길’이라 부른다. 단양역에서 출발할 경우 상진대교를 건너 왼편에 잔도길 진입로가 보인다. 단양역에서 1km 남짓한 거리다. 종착지인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까지는 4.2km 가량 된다. 
본격적인 잔도길은 상진대교와 철교를 지나면서부터다. 강물 위 깎아지른 절벽 20m 정도 위치에 보행 길이 설치되어 있다. 보기엔 아찔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눈이 호사를 즐긴다. 잔잔한 수면에 물그림자를 드리운 잔도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 위로 기암괴석의 물그림자가 춤추듯 일렁인다. 잔도 끝자락에 이르면 만천하 스카이워크로 연결된다. 여기서 1.5km 정도를 더 가면 이끼터널이다. 왕복 2개 차로 옆 비스듬한 벽면에 초록색 실크벽지를 붙여놓은 것 같은 이끼가 명물 중에 명물이다. 날씨가 습할수록 그 진가가 드러난다. 지난 긴 장맛 덕분에 이끼가 만개했다. 이끼터널을 지나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 이른다.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은 ‘선사와 역사를 잇는 고리’라는 콘셉트로 개관한 박물관이다. 1983년 충주댐 건설 당시 수몰지구 문화유적 가운데 구석기시대부터 마한시대까지의 유물을 전시한다. 유물전시관 뒤편엔 빼놓지 말고 챙겨봐야 할 단양팔경 외전 제4경이 있다. 수양개 빛터널이다. 길이 200m, 폭 5m 규모인데 국내 최초의 빛 터널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방치되던 것을 2017년 4월 빛 터널로 개보수해 재개관했다. 해가 질 무렵이라면 야외에 조성된 인공 장미 군락지도 챙겨보자. 5만 송이에 이르는 인공 장미가 화사한 조명을 밝히며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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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 즐기는 수양개빛터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