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중국을 무대로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광복군 지도자 채원개

중국을 무대로 <BR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BR />광복군 지도자 채원개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중국을 무대로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광복군 지도자 채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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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개(蔡元凱)

1895. 3. 24. ~ 1974. 2. 16.

평안남도 영원

건국훈장 독립장(1968)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및 광복회와 공동으로 채원개를 2020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채원개는 만주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며 1925년 육군주만 참의부 군무위원으로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에 힘썼다. 이후 중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대일항전을 전개하였고, 1940년 설립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의 참모처장, 총무처장, 제1지대장 등을 역임하며 광복군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만주에서 독립군 간부로 활동하다

채원개는 1895년 평남 영원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오성학교(五星學校)에서 신학문을 배우던 중 학교가 폐교하자 1915년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해 군사전술을 익혔다. 1919년 3·1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뜻을 품은 그는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어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단하여 압록강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고, 통의부(統義府)에도 가담하였다.

1921년 국민대표회의 개최 소식이 전해지자 통의부(統義府) 대표로 상하이에 파견되었다. 1923년에는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특별 회원으로 뤄양강무당(洛陽講武堂)에 입학하여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후 상하이로 돌아와 1925년 임시의정원 의원 활동을 펼치다가, 다시 만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 참의부 군무위원으로 만주지역 독립운동 단체 규합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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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청 경무국에서 작성한 대한독립단 명부(19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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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병회 회헌』(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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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민의 갈등과 내무총장의 조정(『시대일보』 192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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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총영사가 작성한 참의부 조사 문건(1926. 3. 17.)



대일항전을 전개하며 한국광복군 지도자로 활약하다

채원개는 1927년 황푸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재직하다가 1930년 중국군 작전참모로 전임하였다. 1930년대 들어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가운데, 중국군 독립 제4사 참모장 등 지휘관으로 복무하며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중국군 복무 중에도 1934년 한국독립당 광동지부에 가입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중일전쟁 발발 후 임시정부가 창사에서 광저우로 이동할 때 청사와 거처를 주선하는 등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하였다.

채원개는 중국 관내에서 군사간부로서 축적한 항일전 경험을 바탕으로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장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총사령부 고급참모, 총무처장 등을 역임한 그는 광복군 제1지대장에 부임하여 대일전쟁을 준비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이하였다. 중국을 무대로 독립전쟁에서 활약하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채원개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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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개 환송 기념(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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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개와 김구(한중문화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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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리석 회갑 기념(194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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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제1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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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 창간호(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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