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숨결

칼의 노래
통영 바다에 퍼지다

칼의 노래<BR />통영 바다에 퍼지다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칼의 노래

통영 바다에 퍼지다



통영은 250개의 크고 작은 섬을 품은 지역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잦을 날 없다’는 말처럼 통영은 우리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왔다. 특히 통영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알려진 미륵도 정상에 오르면 1592년(선조25)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한산도대첩의 현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한산도 수루에 올라 학익진을 펼쳤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통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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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통영 쪽빛 바다를 한눈에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교내에는 동상 서너 개가 항상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존경할만한 위대한 인물의 표상이다.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을 맞아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왜적에 맞서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구한 민족의 영웅이다. 지혜롭고 총명하며 불의 앞에 물러서지 않는 충절의 상징이다. 

통영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인 한산도대첩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다. 한때 피비린내가 진동했을 바다는 이제 과거를 잊은 듯 아름다운 쪽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하고 싶다면 미륵도의 지붕 미륵산(458.4m)을 찾아볼 일이다. 미륵산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통영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여름에도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손쉽게 오를 수 있으니 더위 걱정은 잠시 접어둬도 좋겠다. 이곳 케이블카는 길이가 무려 1,975m로 국내 최장이라 손꼽힌다. 승차장에서 하차장까지 10여 분 정도 외줄에 매달려 오르다 보면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이후 케이블카에서 내려 15분 정도 오르면 미륵산 정상이다.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오르는 길목마다 한려수도 전망대, 통영항 전망대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있고, 통영이 낳은 소설가 박경리의 문학관과 묘소가 내려다보이는 쉼터도 있다. 

주말에는 케이블카 이용객이 많은 편이니 되도록 오전 중에 이용하는 편이 좋다. 등산을 하고 싶다면 편도탑승권을 끊고 용화사를 들머리로 출발하면 된다. 이후 관음암, 도솔암을 거쳐 미륵산 정상에 도착한다.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코스와 시간이다. 무엇보다 미륵산의 깊은 속내를 살펴볼 수 있어 더위를 잊은 채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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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거리에서 만난 통영 원조 충무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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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가는 길에 만난 거북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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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제승당


한산대첩의 중심지 한산도

좀 더 가까이에서 이순신 장군과 호흡하고 싶다면 한산도 제승당을 찾아보자. 제승당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3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진영이다. 그러니 한산대첩의 중심지나 다름없다. 

먼저 한산도에 가려면 통영 시내에 있는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이용해야 한다. 배를 타기 전에 충무김밥과 생수를 준비하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이고 편의점에까지 진출한 충무김밥은 통영이 원조다. 

김밥이 쉽게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밥과 속을 따로 차려내는 것이 충무김밥의 특징이다. 속 역시 꼴뚜기나 오징어, 어묵 등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한다. 강구안에 충무김밥거리가 조성돼 있다. 통영군과 충무시는 1995년 통합하여 통영시가 되었지만, 충무김밥은 이름을 바꾸지 않고 옛 이름 그대로 부르고 있다. 

배를 타고 가다가 한산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거북등대를 지나면 제승당 선착장이 보인다. 선착장에서 제승당까지 가는 길은 여유롭다. 첫 관문인 대첩문을 지나면 깊은 숲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우거진 숲길을 마주한다. 이후 충무문을 지나면 제승당에 이른다. 건물은 1930년대에 중수한 뒤 1976년에 정비한 것이다. 

제승당 실내에는 한산도대첩을 비롯한 여러 해전을 묘사한 그림들이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바다 쪽에는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수루가 있고 바다를 향한 처마 아래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가 걸려있다. 시조를 곱씹으며 깊이 읊조려 본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나니


시조는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과 장군 이순신의 모습이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어 시름하는 이순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김훈 작가 역시 그런 관점에서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김훈 작가는 소설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 장군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로 그려내지 않았다. 소설에서 이순신 장군은 인간적 고뇌와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내로 묘사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참혹하고 참담한 전장 중심에 서서 나라를 지켜내야 했고, 그가 감당해야 할 운명은 너무나 거대했고 난폭하였으며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김훈 작가가 묘사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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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제승당 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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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 내 이순신 장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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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안에 위치한 이순신공원



수군 군사도시의 발자취

한산도를 찾는 사람 중에는 망산(293.5m) 트레킹이 목적인 사람도 여럿 있다. 한산면 두억리에 있는 망산은 정상까지 약 3.9km이며 4시간 정도 걸린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구간마다 쉼터가 잘 조성돼 있다. 또 정상부에 있는 휴월정에 오르면 인근 섬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보인다. 

한산도 탐방을 끝내고 다시 강구안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연계된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다. 먼저 이순신공원은 바다와 어우러진 수변공원으로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풍경이 일품이다. 통영 여행의 허브인 문화마당에 가면 거북선 체험을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무기와 당시 수군들의 군복을 입어보는 체험 코너도 운영한다. 세병관은 1603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나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로 이용되었다. 

통영에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되짚어볼 만한 곳이 많다. 그 이유는 통영이 조선시대에 계획된 수군 군사도시라는 점이다. 여행은 ‘아는 만큼 느끼고 깨닫는다’고 한다. 통영을 방문할 때 군사도시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간다면 통영 여행이 더욱 깊이 있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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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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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안 문화마당에 정박 중인 거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