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의
현주소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의<BR />현주소

글 이계형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독립유공자후손 찾기 운동의

현주소



1945년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았지만,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사건, 해결되지 못한 문제,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사를 과거에 머문 역사가 아닌 현재의 문제로 다루며, 오늘도 신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독립운동 및 일제강점 이슈를 소개한다.


전하지 못한 5949개의 훈장

5949. 이 숫자는 2020년 3월 현재 독립유공자 15,931명 가운데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전수하지 못하고 있는 독립유공자들의 수이다. 이는 37.3%에 달하는 높은 비율이다. 우선 그 현황을 살펴보자. 서훈별로 보면 애국장(2,578명)이 가장 많고, 애족장(1,845명), 대통령표창(964명), 건국포장(383명), 독립장(173명) 순이다. 높은 등급의 대통령장(5명), 대한민국장(1명)도 있다. 계열로는 의병(1,644명)이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만주 방면(1,634명), 3·1운동(1,464명), 국내 항일(555명), 미주 방면(176명), 노령 방면(96명), 학생운동(91명), 임시정부(78명), 중국 방면(78명), 의열투쟁(46명), 광복군(41명), 일본 방면(23명), 계몽운동(16명),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한 외국인(9명) 등의 순이다. 공훈록에 기록된 본적 기준해 지역별로 살펴보면 미상 1,434명(24.1%)을 제외하고 평북, 평남, 함남, 황해도 순이다. 북한지역 출신이 전체 51.7%에 해당하는 2,332명으로 과반수가 넘는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후손을 찾지 못하는 비율 또한 높아지고 있다. 현재 5,949명을 대상으로 서훈을 받은 시기와 후손을 찾지 못한 경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시작은 1963년으로, 당시 서훈을 받은 261명 가운데 후손을 찾지 못한 사람은 8.8%에 해당하는 23명이다. 그 뒤 1968년 24명/106명(22.6%), 1977년 3명/105명(2.9%)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1990년에는 역대 최고로 많은 3,629명이 서훈받았지만 후손을 찾지 못한 이는 162명으로 4.5%에 불과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부터 정부 차원의 발굴과 포상이 이루어지면서 1,119명 가운데 593명의 후손을 찾지 못하여 그 비율이 53%로 치솟았다. 더욱이 1995년부터 정부 주도의 발굴·포상이 상례화되자 비율은 점차 높아져 2015년에는 83.9%에 달했다. 이후 2019년 44.5%로 감소했으나, 여전히 낮은 숫자는 아니다. 이렇듯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과 포장을 전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각계각층의 비판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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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아서

1994년 12월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가 독립유공자로 예우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독립운동자 서훈을 전담하고 있는 국가보훈처가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는 독립유공자 발굴과 더불어 후손 찾기도 병행했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정부가 나섰다 하더라도 한국전쟁 등으로 사료가 소실되었고, 유족 상당수가 북한지역에 거주하며, 공적 증명 역시 유족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후손 확인을 위해서는 본인들이 직접 족보·제적등본(가족관계증명서), 당안·호구부(중국 거주 시), 출생·사망증명서(외국 거주 시) 등 독립유공자와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 후 국가보훈처는 중앙 언론사와 행정자치부의 협조를 얻어 2005년 1월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당신도 독립유공자 후손입니다”라는 부제를 달아 독립운동가 유족 찾기 운동을 벌였다. 2006년에는 남한지역에 본적을 둔 사람들에 대해 일선 읍·면사무소의 협조를 얻어 제적부, 민적부, 호적등본 등을 추적하여 후손 확인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이후 지청, 지자체 차원의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은 연중행사로 전개되며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등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은 거의 파악되지 않았다. 2005년 1월부터 재외공관의 도움을 받아 국가보훈처가 본격적인 외국 국적의 독립운동가 유족 찾기 사업을 벌였지만, 2006년 8월 말까지 찾은 이는 62명에 불과했다. 여전히 인력과 사료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2010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재외 동포의 권익증진을 위해 중국·러시아 등 재외 동포에 대한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을 권고했다.

실상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2014년부터다. 국가보훈처는 웹툰을 이용한 간단한 이벤트를 진행하였고, 각지의 지청들도 적극 협조했다. 하지만 본적·주소 등이 확인되지 않아 제적부 조회가 불가능하거나, 본적지가 북한지역이라 후손을 찾지 못하는 경우, 제적부가 소실되었거나 후손·친족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의 진정한 의미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인기리에 방영된 후, 독립운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고무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사 연구 전문가로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는 한편,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업무협약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남한이 본적인 독립유공자에 대해서는 2018년 2월부터 해당 읍·면사무소 등을 직접 방문하여 전수조사를 진행하였고,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 3,700여 곳에 후손 찾기 포스터를 배부하였다. 또한 국가보훈처 누리집(www.mpva.go.kr) 공훈전자사료관에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를 추가하여 독립운동을 한 선대의 명단을 확인하고 후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외 거주 후손의 경우 독립유공자의 3~4대로 선대의 독립운동 관련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외 후손이 있다고 인지되더라도 시·공간적 제한과 후손이 한국어를 모르는 등 언어장벽으로 후손 관계 및 출생·사망증명서 등의 입증자료를 안내하고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이에 독립유공자 중 훈·포장 미전수자 명단을 해당 재외공관에 보내는가 하면 현지 한인 언론, 한인 단체 등과 협조체계를 강화하거나 부처 직원들이 직접 출장을 가서 확인하기도 하였다. 특히 중국,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쿠바, 미주 등지에서 후손 찾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2019년 1월에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에 ‘후손 찾기 전담팀’이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95년부터 2019년 7월 말까지 9,671명에 달하는 후손을 찾아 훈포장이 전달되었다. 최근 실적을 보면, 2015년 80명, 2016년 61명, 2017년 87명, 2018년 249명, 2019년 7월 현재 168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는 28년 만에 가족 품에 전달된 훈장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포상 전수식이 독립유공자 포상 행사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다. 

독립유공자와 이들의 후손을 발굴, 포상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이들에게 명예를 세워줌으로써 국가 정체성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큰 비용과 노력을 들여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끝까지 찾아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국민적 일체감을 쌓아나간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와 그 후손을 찾아 예우하는 것은 모든 국민들의 의무이자 국가의 책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