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史물

아버지의 초상화

아버지의 초상화

글 독립기념관 자료부


아버지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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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김찬기가 그린 심산 김창숙의 초상

16.50×27.00cm

심산기념관 기증



1927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던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의 모습을 둘째 아들 김찬기(金燦基, 1915~1945)가 그린 초상화이다. 김창숙은 3·1운동 직후 파리평화회의에 유림들의 장서를 보내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으며 나석주를 국내에 밀파하여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폭파하도록 했다. 이 일로 1927년 6월 상하이에서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살인미수, 치안유지법, 폭발물취급령 위반 등의 죄목으로 14년의 징역형을 받고 대전형무소에 투옥되었다.이 그림을 그린 아들 김찬기는 1928년 진주고등보통학교 집단 수업 거부를 주도하고 1939년 왜관 사건과 관련하여 투옥되는 등의 항일활동을 펼쳤다. 일제의 감시를 받다가 1943년 아버지의 명을 받고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갔다. 그곳에서 활동하던 중 1945년 해방을 맞았으나 환국을 앞두고 병으로 사망했다.그에 앞서 김창숙은 큰아들 김환기(金煥基, 1909~1927)를 독립운동 중에 잃었다. 김환기는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아 아버지를 돕다가 1927년 국내에서 체포되었다. 옥중 얻은 병으로 출옥 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