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숨결

더위쯤은 쉽게 잊을 수 있다
동해 바다여행

더위쯤은 쉽게 잊을 수 있다<BR />동해바다여행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더위쯤은 쉽게 잊을 수 있다
동해 바다여행


  

짙푸른 바다가 더위쯤은 쉽게 날려버리는 그곳. 시름과 더위는 잊은 채 즐거운 추억 쌓기에 좋은 그곳. 해변들이 줄지어 있어 여름에 더 반가운 그곳은 동해바다와 맞닿은 강원도 동해시다. 뜨거운 한낮을 바다에서 보냈다면 해 질 녘에는 묵호동 논골담길 골목 속으로 발을 들인다. 지역 주민들의 애환이 벽화에 고스란히 녹아든 까닭에 감동과 웃음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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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해변을 찾은 수많은 피서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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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로 그만인 천곡동굴



맏형다운 풍모를 지닌 망상해변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한 바다로 가자

한창 더위로 꼼짝 못하는

여름 한철은 바다에서 살자


강소천 시인의 시 「바다로 가자」의 한 대목이다. 시인의 노래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바다가 옳다. 여름바다에는 청춘들의 만남과 이별이 있고, 그 간극 사이로 바닷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파도와 함께 밀려왔다 밀려간다.

시원한 동해를 벗하고 바다열차가 달리는 지점에 망상해변이 있다. 망상해변은 우리나라 여러 해변 가운데 접근하기 편리한 해변으로 유명하다. 가까운 곳에 영동선 망상역과 동해고속도로 망상 나들목이 있어서다. ‘망상’은 ‘복되고 길한 일을 바란다’라는 뜻을 가졌다. 복을 비는 망상의 뜻때문일까, 망상해변은 자랑거리가 많다. 그중 으뜸은 순백에 가까운 백사장일 게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풍광이라니. 그 광활함을 마주해보지 못했다면 실감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수심 깊은 동해의 여러 해변에 비해 망상해변은 100m까지도 수심 1m 내외로 나직해 온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망상해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해변이 이어진 것도 특이하다. 주수천을 시작으로 북쪽에 도직해변과 기곡해변이 있고, 남쪽 마상천을 끝으로 노봉해변이 자리한다. 각각의 해변을 합치면 4km가 넘는다. 이중 절반 이상이 망상해변이다. 규모 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서해가 감성과 낭만이라면 동해는 도전과 젊음의 아이콘이다. 역동적인 동해는 주민들이 순종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거칠고 척박한 해안가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민들의 몸부림도 치열했다. 방풍 목적으로 조성한 송림이 해안가 주민들의 지친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요즘은 송림의 목적이 좀 더 다양해졌다. 캠핑장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편리한 캠핑을 원한다면 망상오토캠핑장을 권한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용 캠핑장으로 문을 열었다. 임대형 캐러밴과 통나무로 지은 캐빈하우스, 아메리칸 코티지 등 여행의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캠핑카나 통나무집에서 맞이하는 한여름 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그뿐인가. 해수욕은 물론이고 주변에 관광지가 모여 있어 베이스캠프로도 손색이 없다. 주변에서 챙겨볼 만한 곳은 천곡동굴이다.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천연동굴인 이곳은 천장이 낮고 돌출 암석이 많아서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한여름에도 평균 온도가 16°C 정도이니 동굴 안에선 냉장고에 들어선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피서지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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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이 조화로운 추암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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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 활선어판매센터에서는 관광지보다 저렴하게 회를 즐길 수 있다



줄줄이 이어진 해변, 취향 따라 선택해

마상천을 건너 일출로를 따라 달리면 대진해변에 닿는다. 육지와 기나긴 시간을 함께했던 마상천이 바다여행을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비교적 파도가 일정하게 밀려와서 서핑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소문난 서핑 명소다. 백사장은 500m가 조금 넘는 규모다.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아 모래에 콕 박혀 있는 조개를 줍듯이 잡을 수 있다. 조개잡이에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 없다. 물놀이를 하다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 뭔가 느낌이 올 것이다. 그때 주워 담으면 그만이다. 직접 잡은 조개를 넣어 끓인 라면은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좀 더 작고 한적한 해변을 찾는다면 남쪽으로 1.5km 정도 더 내려가 보라. 백사장 규모가 300m가 채 되지 않는 어달해변이 기다린다. 바다 맞은편에 어달산과 오학산이 자리해 아늑한 기분마저 드는 곳이다. 어달산 아래엔 횟집들이 초저녁부터 불야성을 이룬다. 생선회를 즐기고 싶다면 꼭 챙겨 볼 일이다. 좀 더 저렴하게 횟감을 구입하고 싶다면 묵호항 활선어판매센터를 권한다. 어판장에서 직접 생선을 선택한 후 회까지 떠주는 방식으로 저렴한 편이다. 센터 옆에 자리한 수변공원에서 바다를 배경 삼아 회를 맛볼 수 있으니 특별한 추억은 덤이다.어달해변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해변이 있다. 천곡항 북쪽에 자리한 고불개해변과 한섬해변, 감추산 남쪽의 감추해변이 그곳이다. 특히 감추해변은 백사장 길이가 300m에 불과한 작은 해변이지만 맑은 물과 얕은 수심 덕분에 가족단위 피서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는 이마다 탄성을 터트린다. 게다가 손맛을 즐기려는 낚시객들에겐 인기 있는 낚시 스폿이다.

동해의 마지막 해변은 삼척과 이웃한 추암해변이다. 이곳 추암(촛대바위)은 한때 정규 방송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던 애국가 배경 영상으로 등장해 유명해졌다. 지금은 그 영상을 볼 수 없지만 가늘고 기다란 추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엄한 일출 장면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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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작은 집들이 어깨를 맞댄 묵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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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싣고 나르는 할아버지 벽화



삶의 애환을 그리다

묵호동 비탈진 곳에 자리한 논골담길은 묵호항에서 묵호등대까지 이르는 골목이다. 골목 담벼락마다 지역 주민의 생활 모습과 인생 이야기가 그려져 있어 걷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는 묵호항 등대가 있다. 1963년 6월 8일 첫 불을 밝힌 후 지금껏 변함없이 불을 밝히는 고마운 길잡이다. 묵호항 등대는 영화 「파랑주의보」, 「인어공주」, 「연풍연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등대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차를 타고 가려면 창호초등학교를 지나 ‘해맞이길’을 따라 올라야 하고, 걸어가려면 묵호항 수변공원에서 ‘등대오름길’과 묵호시장에서 논골길을 따라 좁다란 골목길로 이어지는 논골 1길부터 3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묵호항이 문을 연 건 1941년이다. 강원 산간에서 캔 무연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조성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 어항까지 갖추게 되면서 동해안 중심 항구로 부상했다. 그러다 보니 1960~1970년대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 당시 묵호항은 한밤에도 대낮처럼 밝았다고 한다. 집어등(集魚燈)을 밝힌 오징어잡이 고깃배 덕분이다. 항구는 늘 분주했고 사람들은 밤낮없이 항구를 오갔다. 동네 똥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도 그때 나왔다. 하지만 1980년대 동해항이 개항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고기잡이배가 들어오면 품삯을 받은 선원들이 즐겨 찾았던 실비집은 건물만 남긴 채 옛 흔적은 사라졌다. 빨간 고무 대야에 넘쳐나던 각종 해산물과 집마다 빨래처럼 생선을 널어 말리던 덕장의 풍경도 이제는 추억거리가 됐다. 그 옛날의 풍경이 이제 논골담길 골목에 벽화로 그려졌다. 논골담길을 찾는 이들은 그 흔적을 따라 마을 안으로 발을 들인다. 마을을 구석구석 돌며 모든 벽화를 꼼꼼히 챙겨 보고 싶다면 계획을 세워 오르는 것이 좋다.

등대오름길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좁디좁은 골목길은 포장은 됐지만 해삼 등껍질처럼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겨먹었다. 간간이 보이는 덕장에는 생선이 꾸덕꾸덕 말라간다. 동해 묵호다운 풍경이다.

옛것을 담은 등대오름길과 달리 논골1길부터 3길은 묵호의 현재와 추억이 그려졌다. 거친 바다를 가르는 ‘묵호호 벽화’는 세상을 향한 묵호의 소리 없는 외침이다. 비탈진 골목길에 그려진 수레 끄는 할아버지 벽화에는 형형색색의 풍선을 그려놓았다. 힘든 길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희망이 엿보인다.

논골담길은 좁고 가파른 골목의 연속이다. 그래서 단숨에 오르기 쉽지 않다. 중간에 쉬어 갈 수 있는 쉼터가 여럿 있으니 땀도 식히고 다리도 쉬어본다. 쉼터에서 바다를 향해 앉아 쉬노라니 갈매기가 날아와 아무도 모르는 묵호이야기를 전해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