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사람

지구반대편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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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영대 역사작가


지구반대편의 독립운동가


  

플로이드 윌리엄스 톰킨스는 1850년에 뉴욕에서 태어났다.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목회자가 되었고, 필라델피아에서 성직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던 중 3·1운동을 맞아 서재필과 함께 한국친우회(League of Friends of Korea)를 설립해 미국 정부에 한국 독립 지원을 청원하는 등 독립운동을 도왔다. 1932년에 사망하고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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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 윌리엄스 톰킨스가 기조연설을 했던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나는 여러분이 추구하는 독립과 자유에 대한 투쟁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힘쓰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그 나라가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존재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면 더 그렇다. 선교사는 다를 수도 있다. 선교사는 새로운 신자를 찾아 보통의 사람이라면 가지 않을 낯설고 험한 나라로 떠나는 고생을 무릅쓴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을 찾는다.

많은 서양 선교사가 한국에 왔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호머 헐버트 등. 그들은 선교를 위해 한국을 찾았으나 한국인들이 일본의 압제로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최선을 다해 한국의 독립을 도왔다. 그러나 톰킨스 목사의 사례는 조금 다르다. 그는 미국 본토, 그것도 대서양에 면한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목회를 운영했다. 한국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산 셈이다. 한국과 아무런 접점도 없던 톰킨스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건 순전히 호의였다.


"잔악한 짓이 벌어지는 곳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누이가 깡패에게 강간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방의 옷장 속에 숨어서 하나님께 누이를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런 종류의 크리스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깡패를 두들겨 패서 누이를 구한 후 옷장 안에 들어가기도 하는 크리스천이 돼야 합니다."


톰킨스는 일본의 한국 통치를 잔악한 짓으로 보고, 한국의 독립을 기꺼이 도왔다. 그 인연을 만든 건 서재필을 비롯한 한국인들이었다.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톰킨스 목사가 처음 한국 독립운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필라델피아 리틀 시어터(Little Theater)에서 열린 ‘제1차 한인회의’에서였다. 톰킨스 목사와 서재필이 함께 결성한 한국친우회는 미국 내 21개 도시에서 대표들을 모아 한국 독립을 도와 달라고 미국 정부에 청원했다. 이 자리에서 톰킨스 목사는 기조연설을 맡았다.


"일본 정부는 강압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대한의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고 있다. 한국친우회는 미국이 주장하는 평등한 권리와 자유의 가치가 약소국에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톰킨스 목사는 한국친우회의 발기인이자 초대 회장으로서 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우드로 윌슨에게 한국이 왜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1923년에는 관동대지진을 틈타 벌어진 일제의 조선인대학살을 미국 의회에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무상하게도 미국 정부는 계속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방관했다. 당시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및 미국과 연합해 독일과 싸웠고, 미국 정부는 일본을 같은 편으로 인식했다. 이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거쳐 일본의 침략적 태도가 미국에 위협이 됨을 깨달은 뒤에야 미국정부도 일본을 경계하게 되었다.

톰킨스 목사는 한국친우회에서 함께 활동한 조지 노리스, 셀던 스펜서 등 6명의 미국인과 함께 한국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서재필은 톰킨스 목사를 가리켜 “자유와 독립을 얻기 위해 잘 무장된 군인들로 구성된 몇 개의 연대와도 맞먹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비록 한국에는 와본 적도 없고 일본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한국의 광복을 직접 보지도 못했지만, 도움을 받은 한국에서는 톰킨스를 잊지 않았다. 2015년 한국은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톰킨스 목사의 증손자인 플로이드 윌리엄스 톰킨스 3세를 한국으로 초청해 훈장과 함께 깊고도 큰 감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