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제헌절에 친일파 청산문제를
되돌아보다

제헌절에 친일파 청산문제를<BR />되돌아보다
    


글 이계형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제헌절에

친일파 청산문제를 되돌아보다


  

1945년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았지만,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사건, 해결되지 못한문제,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가 있기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사를 과거에 머문 역사가 아닌 현재의 문제로 다루며, 오늘도 신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독립운동 및 일제강점기 이슈를 소개한다.




이념 갈등과 청산되지 않은 역사

얼마 전 퇴역군인 모임인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광복회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광복회가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서훈을 추진하고, 국군 창군 원로이자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모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백선엽은 1943년 4월에 만주군 소위로 임관한 뒤,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며 만주지역 항일무장 독립 세력을 탄압한 인물이다. 이에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에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였다. 그가 지금도 살아있으니 생존하는 친일파 중 몇 안되는 사람인 셈이다.

왜 우리는 친일파 문제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광복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친일파’라는 화두는 여전히 뜨거운 논점과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미완으로 끝난 ‘친일파 청산’이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 대립’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1948년 5·10 총선거로 탄생한 제헌국회는 정부를 수립하자마자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일제강점기 반민족행위와 친일행적을 조사하고처벌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해당 법에 따라 ‘반민족행위 특별 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결성되었다. 어느 정파에도 소속하지 않은 무소속 의원이 85석이라는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결과는 참담했다. 친일과 지주 세력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이승만 정권과 집권 여당의 노골적인 방해와 공작 때문에 단 한 명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역사의 정의’가 무너진 것이다. 해방후 독립운동의 역사적 규명과 독립운동가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커녕, 일제강점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처벌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방 정국은 친일 청산보다는 반공 이념으로 도배되었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38선을 경계로 주둔하면서 남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 대립의 장으로, 냉전의 화약고로 변했다. 친일세력은 반공주의자로 ‘화려한’ 변신을 하고 독재 권력에 기생하며 막대한 자본력을 이용해 우리 사회의 굳건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러면서 친일 청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끝내 우리 사회는 한쪽 날개를 잃은 것이다.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리영희는 1994년에 펴낸 평론집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에서 “8·15 광복이후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며 한국 사회에 만연한 맹목적 반공과 냉전 수구적 사고를 질타했다. 당시 극단적인 우편향의 대한민국 사회를 표현한 것이다.


갈등 대신 협력이 필요할 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한국 사회에 달라진 점이있을까? 대한민국의 갈등지수 가운데 이념 갈등이 최고인 것을 보면, 오히려 이념 갈등은 더 심해진 듯하다. 근래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가 좌·우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친일=독재=보수’라는 일련의 선과 ‘독립운동=민주화운동=진보’라는 선은 평행하게 대립하고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일반론적이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는 민족주의와 국익을 우선하지만, 대한민국의 보수는 자신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오히려 진보가 ‘진정한 보수’로 보여 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진보와 보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국격의 가치를 더 높이려면 건전한 보수와 진보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두 축(軸)으로 바로 서야 할 것이다. 둘은 갈등이 아닌 협력 관계, 보완적인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모적인 논쟁이 대한민국을 가르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친일 청산 문제로 편이 갈리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친일 문제를 덮고 넘어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1949년 미완으로 끝난 친일 청산문제는 2005년 5월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진상규명위원회는 활동이 종료된 2009년 11월까지 1,006명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비영리 연구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776명보다 훨씬 적은 수이다. 최소한 정부차원에서 규정한 ‘1,006명’의 과오는 밝히고, 우리 사회는 함께 반성해야 한다.

반성은 자기 자신의 상태나 행위를 돌아보는 일이다. 이를 통하여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발전일 것이다. 제헌절에 친일파 청산 문제를 되돌아보며, 진정한 반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발전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