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추억

전쟁과 부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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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전쟁과 부대찌개


  

어려운 시절 먹었던 음식은 종종 향수로 남는다. 일종의 추억 같은 것이다. 부대찌개도 그렇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를 넣어 만든 찌개. 그러나 부대찌개의 유래를 말하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 묘하다. 미군 부대 고기를 얻어먹고 살았다는 불편함과 먹고살 만해진 지금 그 시절을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부대찌개의 유행은 경제발전의 산물

사람들은 부대찌개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부대찌개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 아니다. 그 시절 햄과 소시지를 넣은 부대찌개를 먹은 사람들이라면 단연 ‘특권층’이었다. 미국 PX 물품인 햄과 소시지, 베이컨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속된 말로 양키 물건을 파는 암거래 상을 통해서나 구할 수 있었다. 양담배 한 갑을 얻으면 몰래 자랑하고 아껴 피우던 때였다. 하물며 햄이나 소시지는 오죽했으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부대찌개를 먹기 시작한 시점은 한국전쟁 직후가 아닌 1970~80년대였다. 시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한창 발전할 때였고, 더 이상 미국 PX에서 빼낸 물건을 탐내지 않았다. 이전까지 부대찌개는 음식의 실체만 있을 뿐 특정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PX에서 몰래 빼 온 고기로 만든 음식이라고 공공연하게 광고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제 물건 단속이 엄격하게 이루어지던 시절이었으니, 부대고기로 끓인 찌개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고기도 압수당하고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부대찌개’라는 이름은 역설적으로 미군 부대 고기가 아닌 국산 햄과 소시지를 찌개에 넣기 시작한 70~80년대 이후부터 쓰였다. 이 무렵, 국내 육가공 산업이 발달하면서 품질이 좋아짐은 물론 관련 시장도 연평균 25% 이상의 상승세를 보였다.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한 통조림 햄이 등장하면서 부대찌개는 친숙하고 흔한 음식이 된 것이다.


부대찌개는 어디에나 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고기로 만든 음식은 본래 ‘존슨탕’이라고 불렸다. 부대찌개도 여기에 포함된다. 존슨탕이라는 이름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슨’으로부터 따왔다. 존슨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1963년부터 1969년까지였고, 그가 한국을 방문한 해가 1967년이었으니 존슨탕이라는 이름도 그 무렵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측한다. 부대고기를 넣고 만든 찌개의 탄생을 1960년대로 보는 이유다.

혹자는 부대찌개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한다. 미군 부대에서 몰래 가져온 고기로 만든 음식이라는 유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누군가에게 부대찌개는 어려웠던 시절과 그 시절을 극복해낸 자부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눈물 젖은 빵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가장 힘들었던 날먹었던 부대찌개의 맛을 추억하는 것이리라.

세계 각국에도 부대찌개 역할을 하는 음식들이 있다.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스팸 주먹밥, ‘하와이안 무스비’도 하와이 주둔 미군 부대의 부대고기를 가지고 만든 음식이다. 마찬가지로 미군부대가 주둔한 일본 오키나와에도 두부와 채소, 스팸과 소시지를 넣고 볶은 ‘찬푸르’라는 음식이 부대 요리로 사랑받았다. 이탈리아의 카르보나라 크림 파스타 또한 부대 음식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로마 시민들이 이탈리아 주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우유와 달걀, 베이컨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카르보나라 역시 부대찌개와 비슷하게 1980년대 이후 유행을 탔다.

전쟁을 겪은 어느 나라에나 부대찌개는 있었다. 그리고 부대찌개에는 김치와 햄 등 온갖 재료를 넣은 그 요리법처럼 전쟁의 상처를 겪어내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극복해낸 사람들의 다난한 역사가 있었다. 어쩌면 부대찌개는 전쟁이라는 고난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을 위한 훈장 같은 음식인지도 몰랐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파원 활동, 출장, 연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머물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결과,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음식잡학사전』, 『신의 선물 밥』,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