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찾은 오늘

우리의 철학은 오직
직각적(直覺的) 생활철학이 있을 뿐

우리의 철학은 오직<BR />직각적(直覺的) 생활철학이 있을 뿐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우리의 철학은 오직 직각적(直覺的)

생활철학이 있을 뿐




최근 인터넷상엔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기자를 ‘기레기’라 부르는 현상은 일상이 됐다. 과연 언론과 기자들의 수난시대라 불릴만하다. 그리고 여기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참된 언론인이 있다. 바로 신언준 선생이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으며 조국 독립에 앞장섰다.




엄혹한 시대를 산 언론인 신언준의 투쟁철학

▲ 1904년 11월 평안남도 평원 출생 ▲ 1918년 정주 오산학교 입학 ▲ 1919년 3월 31일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 시위운동 전개 ▲ 1923년 중국 망명 ▲ 1924년 3월 10일 상하이에서 독립운동단체 청년동맹회 조직 ▲ 1926년 상하이 지역 학생 독립운동단체 통합. 한인학우회 결성 ▲ 1927년 12월 7일 대독립당 결성 ▲ 1929년부터 10여 년간 『동아일보』 상하이, 남경 특파원으로 활동 ▲ 1938년 폐결핵으로 사망


신언준은 격동기 지식인의 삶을 살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신념이 있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민족정신 배양으로 유명한 오산학교에 입학했고, 3·1운동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졸업 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산하의 대한교민단에서 독립운동가 및 교민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물론 이렇게만 본다면 민족교육에 전념한 교육자 같지만, 무엇보다 그는 ‘언론인’이었다.


“우리의 철학은 오직 직각적(直覺的) 생활철학이 있을 뿐이오, 오직 투쟁철학이 있을 뿐이다. 생활의 실내용(實內容)을 모르고 공상적인 안락과 평화에 심취된 개인이나 민족은 반드시 생존의 위급(危急)으로 후회막급한 일이 있는 바이다.”


신언준이 발표한 「투쟁철학」의 한 구절이다. 철학이란 단순히 추상적인 말장난이 아닌 실생활에서 찾아지는 생활철학이라 역설한 그는 민족 독립을 위한 투쟁철학을 말했다. 독립을 향한 절절한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가? 놀라운 것은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참 언론인의 자세란 무엇인가

1929년 세계대공황 이후 전 세계는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이 시기 일본은 ‘침략’으로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그들은 자국의 농촌을 돌며 만주로 이주를 권했고, 그 결과 만주에 수많은 일본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미 그곳엔 한국인과 중국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1931년 7월 2일 중국 지린성 창춘현(長春縣) 만보산(萬寶山) 지역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수로를 사이에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이것이 바로 ‘만보산 수로 사건’이다. 갈등의 배후엔 일본이 있었다. 일본은 먼저 자릴 잡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일본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 양국 주민 간의 사이를 갈라놓고 이를 빌미로 만주를 침략하려 했다.

신언준은 일찍이 일본의 계략을 간파하고 취재에 들어갔다. 그리고 「만보산 문제와 중국 측 방침」이라는 제목의 전문을 『동아일보』에 보냈다. 뒤이어 「2천만 동포에게 고함-민족적 이해를 타산하여 허무한 선전에 속지 말라」는 사설을 『동아일보』에 실으며 만보산 사건에 섣불리 행동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만보산 사건의 진실을 중국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중국인의 반한(反韓)여론을 항일여론으로 돌려세웠다.

최근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이슈 중 하나는 ‘가짜뉴스’다. 사람들은 기자와 뉴스를 믿지 못하고 언론사의 이름부터 확인하기 바쁘다. 소문과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요, 객관적 사실 전달이 언론의 책임이란 격언은 무색해져 버렸다.

엄혹했던 시기 신언준의 활동은 언론의 사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실을 보도한 덕분에 일본의 간교한 계략을 무산시키고, 자칫 오해로 갈라설 뻔했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언론의 힘, 참된 언론인의 힘이 아닐까?

우리는 신언준과 같은 언론인이 있었기 때문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는 이젠 어렵기만 한 숙제가 됐다. 물론 진실은 언제나 간단하고 간단할수록 지키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지키기 어려운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했고, 그들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언론인들이 이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