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추억

미꾸라지의 승천

미꾸라지의 승천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미꾸라지의 승천




조선시대 추어탕은 점잖은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던 음식이었다.얼마나 미천한 음식이었는지 남들 앞에서 체면치레를 하느라 대놓고 먹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추어탕 맛집에는사람들이 붐비고, 몸보신을 한다며 금세 한 그릇을 비워낸다.‘미꾸라지 용 됐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추어탕은 볼품없는 미꾸라지를 일순간 용으로 만들어버렸다.




일제강점기 추어탕의 이미지 변신

조선시대 문헌에서 추어탕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19세기 초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에 고기는 기름진 것이 맛있다며 시골 사람들, 즉 야인(野人)들이 잡아서 국을 끓이는데 특이한 맛이란 설명이 나온다. 야인들이 먹는 특이한 맛의 국이 바로 추어탕이었다. 마찬가지로 19세기 중엽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두부에 미꾸라지를 넣어 끓인 추두부탕이 있는데 부쳐 먹거나 탕으로 끓여 먹는다면서 맛이 매우 기름지며 한양에서는 천민인 반인(伴人) 사이에서나 성행한다고 나와 있다. 당시 반인은 관노는 아니지만 성균관 소속의 노비 신분으로 백정만큼 천한 취급을 받던 이들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추어탕은 천민, 또는 꼭지패라 불리는 청계천 거지나 먹는 천하디 천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추어탕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문헌에 추어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근대 잡지 『별건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전날에는 선술집은 대개 하급 노동자들만먹는 곳이요, 소위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은 별로 가지를 않았지만 지금은 경제가 곤란한 까닭이라 할지 계급 사상의 타파라 할지 노동자는 고사하고 말쑥한 소위 신사들이 전날 요리 집이나 앉는 술집 다니듯이 보통으로 다닌다.



1920년대 경성에는 꽤 많은 선술집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곳에서 추어탕을 팔았다. 조선 말기 문인이자 일제강점기에 언론인으로 활동한 최영년은 1925년에 발간한 『해동죽지』에서 전국의 명물 음식으로 황해도 연안의 추어탕을 꼽기도 했다. 연안에는 미꾸라지가 많아 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이면 미꾸라지를 넣고 두부를 만드는데, 이것을 가늘게 잘라 생강과 후추를 넣고 끓여 먹으면 맛이 좋다는 것이다. 1924년에 나온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라는 요리책에도 추어탕 끓이는 법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추어탕은 경성 시내 선술집에서 쉽게 접하고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대중식으로 거듭났다. 드디어 사람들이 미천한 미꾸라지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추어탕이 흥할 수밖에 없는 이유

조선시대 추어탕이 박한 대접을 받았다고는 하나 양반가 사람들이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던 건 아니다. 깊은 밤, 양반집 마님들은 사랑채에 머무는 서방님에게 은밀한 야식으로 미꾸라지와 두부를 넣고 끓인 추어탕을 대접했다. 평소에는 천한 음식이라 무시하면서도 한밤중이면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추어탕을 먹었던 것이다. 드러내놓고 먹기에 점잖지 못한 음식이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추어탕이 야식으로 사랑받았던 이유는 정력에 좋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미꾸라지는 힘이 넘치는 생선으로, 추어탕이 스태미나 음식임은 당연한 일. 가을에 특히 영양이 넘치고 맛있기 때문에 가을 추(秋)자를 써서 추어라지만, 본래 옛날식 표기는 힘이 매우 좋다는 의미의 우두머리 추(酋)자를 쓴 추어(酋魚)였다. 중국에서는 ‘작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큰 파도를 뒤엎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농부들은 종종 미꾸라지를 ‘수중 인삼’이라 불렀다. 일본에서는 미꾸라지 한 마리를 장어 한 마리에 비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중일 세 나라 모두가 인정하는 미꾸라지의 보양 효과니, 제아무리 체면이 아쉬운 양반이라 하더라도 먹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1920년대를 전후로 추어탕이 천민 음식에서 일반 보양식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뛰어난 보양 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 『별건곤』의 기록처럼 일제강점기 경제난이나 시대변화에 따른 계급 사상의 타파 등 사회현상과의 관련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찌 됐든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들이 추어탕을 먹었다. 멸시받던 미꾸라지가 진짜 ‘용’이 되어 승천하는 순간이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파원 활동, 출장, 연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머물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결과,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음식잡학사전』, 『신의 선물 밥』,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