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도심 속 둘레길 여행

도심 속 둘레길 여행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도심 속둘레길 여행

- 아차산·용마산·망우산 -

  
  

긴 여름이 지나고 성큼 가을이 다가왔다.가을은 산이 아름다운 계절이다.서울과 경기도 구리에 걸쳐 넓게 뻗은 아차산은역사와 자연이 함께하는 에너지 충전소다.산맥의 기(氣)가 좋아 인근 주민들은 아차산 덕분에큰 복을 누린다고 말한다.서울 둘레길 코스로 한나절이면 산을 둘러볼 수있으니 아차산의 좋은 기운으로여름내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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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아차산




삼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한강 줄기가 한눈에 보이는 해발 285m의 야트막한 산은 입지가 빼어나 예부터 군사 주둔지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삼국시대에는 한강 유역 지배권을 놓고 고구려·백제·신라가 치열하게 맞부딪쳤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구리 시내 한복판에 서있는 광개토대왕 동상과 비석 모형이 아차산 일대의 파란 많은 역사를 증언한다. 광개토대왕(재위 기간 391년~412년)은 탄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고구려의 국력을 동아시아 일대에 크게 떨쳤다. 신라를 도와 왜적의 침입에 맞서기도 했다. 동상은 높이 4.05m, 너비 2.7m의 청동입상으로 관모를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까마귀, 즉 삼족오가 새겨진 알을 들고 있다. 높이 6.39m, 너비 2m에 달하는 광개토대왕비엔 힘찬 필체의 44행 1,775자가 음각돼 있는데, 이는 동양 최대의 크기를 자랑한다.

산행 코스는 다양하지만, 이번에는 한강변 워커힐호텔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검문소 주변 우미내 마을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산들머리 한쪽에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있다. 이곳엔 고구려 보루와 토기, 철기와 같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일종의 박물관인 셈이다. 학생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학습공간이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니, 어쩐지 풍경이 낯설지 않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10여 분쯤 오르면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어린 온달샘(약수터)이 나온다. 약수터와 멀지 않은 곳에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깃돌 바위가 있다. 다시 조금 더 오르면 아차산성과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돌과 흙으로 단단하게 쌓은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남쪽에 있는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의 운명을 좌우했던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정벌할 때 백제 개로왕을 사로잡은 곳으로 관련 유물 1,000여 점이 출토되기도 했다. 산성은 멀리서 보면 작은 언덕 정도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길이 1㎞, 높이 10m의 제법 규모가 있는 시설이다.

아차산성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단성(阿旦城)·아차성(峨嵯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 등. 이들 이름과 능선을 따라 들어선 크고 작은 고분들은 그 당시 백제·신라·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아차산성에서 정상을 향해 조금 더 올라가면 팔각정(전망대)이 있다. 이곳에서는 서울 강·남북은 물론 한강 줄기와 중랑천, 왕숙천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팔각정 뒤 해돋이 광장 옆으로는 산길이 뚫려 있다. 여기에서 정상까지는 15분 정도가 걸린다. 팔각정에서 능선 아래쪽 길을 더듬어 내려오면 대성암을 발견할 수 있다. 본래 이름은 범굴사라고 한다. 대웅전 뒤편, 암벽을 다듬어 만든 암각문에는 당시 절의 재산목록과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 논과 밭의 단위가 그대로 적혀 있어 암자의 역사를 헤아리게 한다. 대성암 동쪽 바위산 화강암 위에 선 삼층석탑은백제 양식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 석탑이다. 의상대사가 수련했다고 전해지는 천연 암굴도 가까이에 있다.아차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능선 일대에 남아 있는 보루다. 475년, 고구려가 한성백제를 멸망시킨 후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남한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쌓은 군사시설이다. 1990년대부터 아차산에선 20여 개의 고구려 보루가 발견되었고 이 중 17개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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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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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입구에 있는 고구려 대장간 마을




한강을 따라 나란한 산

아차산 건너편의 용마산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속한다. 산 능선이 망우리 공원(묘지)과 중곡동을 거쳐 어린이대공원 후문까지 이어져 있어 종주가 가능하다. 갖가지 수목들과 산허리를 따라 늘어선 암벽이 예사롭지 않다. 곳곳에 체육시설이 있어 운동을 겸해 산을 오르는 사람도 많다. 일출명소로도 유명한데, 새벽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낮보다 더 많을 정도다. 깔딱고개에서 보이는 조망이 시원하다. 아득하게 펼쳐진 서울 시내와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잡힌다. 아차산을 지나 용마산까지 향하는 등산로는 대부분 경사가 완만하므로 가족 산행과 야간산행에도 안성맞춤이다. 해가 질 무렵 간단한 음료와 먹을거리를 배낭에 챙겨 넣고 랜턴 불빛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해맞이 광장 또는 제1·2 헬기장에서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이 반긴다.
용마산은 망우산과도 이어져 있다. 해발 282m의 망우산은 중랑구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다. 아차산, 용마산에 비해 경치도 뒤지지 않는다. 등산로에 설치된 전망대 너머로 서울의 동쪽을 향해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시원스레 펼쳐진 남산·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경기도 남양주 일원이 보인다.

망우산은 망우리 공원(후에 ‘사색의 길’로 바뀌었다)의 망우리 공동묘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33년 일제에 의해 공동묘지가 되어버렸던 이곳은 공원화 작업을 통해 현재는 녹지공간과 쉼터로 거듭났다. 1973년 2만 8,500여 기의 분묘가 가득 찰 정도였으나 이후 이장과 납골을 장려하면서 지금은 7,900여 기의 묘만 남아있다고 한다.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에서는 망우리 공원을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 6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무섭고 으스스했던 공동묘지가 우리 근현대 역사문화의 산실로 다시 태어났다.
공원을 따라가는 순환길(둘레길) 양쪽으로 크고 작은 묘들이 보인다.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하다. 소파 방정환·만해 한용운·서동일·오세창·문일평·오기만·서광조·서동일·오재영·유상규 등 독립지사와 함께 소설가 계용묵·화가 이중섭·작곡가 채동선·순조의 맏딸 명온공주·가수 차중락·야구선수 이영민·시인 박인환·의사 지석영과 같은 낯익은 인물들의 묘소가 있다. 각 묘소 앞에는 망자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는 연보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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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능선에서 바라본 용마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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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해맞이 광장




망우리 공원에 잠든 독립운동가

소파(小波) 방정환(1899~1931)은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널리 쓰이게 한 위인이다. 그는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나 보성전문학교를 나왔다. 현재 당주동 길가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 나신 곳’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방정환은 33세의 짧은 생을 보내며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창립하고,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해 행사를 치렀다. 색동회의 창립은 훗날 어린이날 제정의 기폭제가 됐다. 그가 어린이 운동에 발 벗고 나섰던 때는 일제의 압박이 거셌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정환은 친구들과 뜻을 모아 ‘경성청년구락부’모임을 만들고 독립의 희망을 싹틔웠다.

방정환의 묘, 비석 앞면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 뒷면엔 ‘동무들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연보비(年譜碑)에는 그의 ‘어린이날의 약속’ 중 일부가 새겨졌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은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장례 위원장을 맡는 등 존경받는 국가 원로 지도자로 활동했다.호암(湖岩) 문일평(1888~1939)은 일제강점기 사학자이자 언론인이며 교육자였다. 그는 역사 속에서 민족정신을 찾아내어 이를 통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일보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글을 썼다.태허(太虛) 유상규(1897~1936)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도산 안창호의 비서로 일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병원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묘 연보비에는 『도산 안창호』를 쓴 춘원 이광수의 글 일부가 있다.


도산의 우정을 그대로 배운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유상규였다. 유상규는 상하이에서 도산을 위해 도산의 아들 모양으로 헌신적으로 힘을 썼다. 그는 귀국해 경성 의학 전문학교 강사로 외과에 있는 동안과 사퇴 후의 모든 시간을 남을 돕기에 바쳤다.


우미내 마을에서 구리 시내 방면으로 46번 국도를 타고 교문사거리를 지나면 9개의 능이 모셔진 동구릉(사적 제193호)이 나온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해 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유릉·경릉이 모두 모여 있으니 역사의 부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묘역 주변은 온통 나무로 둘러싸여 제법 아늑한 느낌을 준다.능과 능을 이어주는 오솔길은 새소리를 들으며 걷기에그만이다. 태조의 건원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봉분이 억새풀로 덮여 있다.동구릉에서 가까운 곳에 구리한강시민공원이 있다. 어느새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룬다. 한강을 따라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나 있고, 야구장·잔디광장·정자·실개천·소나무 동산 등이 어우러져 있으니 가족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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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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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동구릉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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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구리한강시민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