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세계사

유전병이 불러온
제2차 러시아 혁명

유전병이 불러온<BR />제2차 러시아 혁명

글 고종환 아주대학교 외래교수


유전병이 불러온

제2차 러시아 혁명




혁명은 한 나라의 운명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며 역사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혁명,제1차 러시아 혁명 등. 모든 혁명의 배경에는 정치적·경제적 혼란과 함께지배계급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반드시 동반되었다. 단, 제2차 러시아 혁명은 조금 달랐다.혈우병과 괴승의 등장에서부터 혁명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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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여(女) 대공의 결혼식

1894,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 국립 러시아 박물관



러시아 최고 권력자가 된 괴승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몰락 뒤에는 혈우병과 라스푸틴(Grigorii Efimovich Rasputin, 1872~1916)이라는 괴승이 있었다. 니콜라이 2세가 허수아비 황제 노릇을 하는 동안 라스푸틴은 권력을 가지고 정치를 농락했다. 이에 분노한 민중들에 의해 러시아 왕조(로마노프)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후 레닌이 주도하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고 황제와 그 가족들은 폐위와 구금을 거쳐 종국에는 총살당하면서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라스푸틴의 농락은 그렇다 치더라도 혈우병과 혁명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혈우병은 상처가 나면 피가 잘 멎지 않는 병이다. 니콜라이 2세와 표도로브나 여 대공의 결혼으로 혈우병이 러시아에 들어왔다.

러시아 혈통인 니콜라이 2세와 달리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유럽 왕족들의 할머니라 불리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9명의 자녀들은 모두 유럽 주요 국가의 왕실과 결혼했는데 그중 알렉산드라는 둘째 딸이 낳은 손녀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을 가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라와 니콜라이 2세가 결혼을 하면서 혈우병이 러시아의 황태자에게까지 유전된 것이다. 혈우병의 가장 큰 특징이자 비극은 아들에게 병이 유전되는 것.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는 4명의 공주 끝에 결혼 10년만인 1904년에 어렵사리 아들 알렉세이를 얻었지만, 그는 지독한 병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의학 기술로는 혈우병을 고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황후의 걱정과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그런 황후에게 접근한 이가 바로 라스푸틴이다. 라스푸틴은 러시아정교회 사제의 신분과 예언자, 그리고 의사로서 시골에서 인기를 끌던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신비한 주술을 사용해 왕자의 혈우병 증세를 완화시켰고, 이 일로 황제와 황후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었다. 라스푸틴은 금세 러시아 정계 최고 실권자로 등극했다. 권력을 등에 업은 라스푸틴의 기행과 전횡은 정치와 사회를 망라하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점차 라스푸틴을 넘어 러시아 왕조에게까지 미치게 된 민중의 분노는 제2차 러시아 혁명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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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에게 농락당하는 황제와 황후를 조롱·비판하는 카툰



제2차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정권 수립

니콜라이 2세의 가장 큰 정치적 실책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이었다. 신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괴승 라스푸틴에게 정치를 맡긴 결과였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은 러시아로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막대한 재정지출만을 불러온 잘못된 선택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는 밀가루 반입량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국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해야 할 만큼 큰 어려움에 빠졌다. 1917년 3월(러시아력 2월), 식량 배급마저 중단되자 화가 난 민중들은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빵을 요구하며 시위에 돌입했다. 빵과 우유를 요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 행렬에 공감한 다른 노동자와 농민이 동참하였고, 여기에 명분 없는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와 러시아에 대한 뿌리 깊은 원망을 가지고 있던 군인들도 가세했다. 순식간에 시위는 무력혁명으로 발전했다. 심상찮은 시위대의 규모와 위세에 놀란 당국이 경찰과 군대를 동원, 발포를 포함한 강경진압을 단행하였다. 이로 인한 사망자만 수백 명에 달하면서 민중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시위대의 기세는 점차 고조되어 전국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1905년 제1차 러시아 혁명에 이은 1917년 제2차 러시아 혁명이다.

러시아 정국의 혼란 속에서 레닌은 자신이 이끄는 볼셰비키와 함께 11월(러시아력 10월) 무장혁명을 일으켜 마침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볼셰비키는 10월 26일에 열린 제2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노동자·농민 소비에트 정부의 수립을 선포하는 것으로 러시아 혁명을 완성했다.




고종환

한국 프랑스문화학회의 재무이사이자, 아주대학교와 경상대학교 외래교수. 프랑스 문화와 예술, 서양연극사, 광고이미지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한권으로 읽는 연극의 역사』와 『오페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 『글로벌 다문화교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