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추억

콩밥에 담긴 우리네 삶과 눈물

콩밥에 담긴 우리네 삶과 눈물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콩밥에 담긴 우리네 삶과 눈물

        

콩밥 먹는다는 말의 역사

콩밥이 왜 감옥의 상징 음식이 됐는지는 대부분이  옛날 교도소에서 콩밥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안다. 하지만 이제는 한참이나 지난 이야기에 불과하다. 속어가 통용되는 것과는 달리 교도소에서는 1986년 콩값이 급등하면서 재소자 급식기준이 쌀과 보리 각각 50%로 바뀌었다. 현재는 100% 쌀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쌀의 비중이 점점 늘어 쌀 90%, 보리 10%의 잡곡밥이 제공되다가 2014년 상반기부터 완전 백미로 바뀐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보리가 쌀보다 비싸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먹는 밥의 종류로 교도소에 간다는 말을 제대로 하려면 이제 콩밥 먹는다는 말 대신 쌀밥 먹는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는 콩밥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강하게 심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1986년 이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콩밥을 제공했기에 “콩밥 먹는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1957년의 교도소 재소자 급식규정을 보면 쌀 30%, 보리 50%, 콩 20%를 섞은 잡곡밥이 정량이었다. 쌀보다는 잡곡의 비중이 훨씬 높기도 하고 또 밥을 지었을 때 각 낱알의 크기를 고려하면 콩이 산술적인 비중보다 훨씬 높게 느껴졌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콩밥 먹는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의 콩밥

콩밥 먹는다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당시 수감자들의 급식을 보면 왜 이런 표현이 생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36년 형무소 식단표를 보면 급식규정이 쌀 10%, 콩 40%, 좁쌀 50%로 구성돼 있다. 이런 비율이라면 급식규정대로 제대로 밥을 지었다고 해도 콩 덩어리에 쌀과 좁쌀 몇 톨이 붙어있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를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먹어야 한다면 먹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콩밥 먹는다는 표현이 생겨난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옛날 감옥에서는 왜 하필 콩밥을 먹였을까?
음식 종류가 제한된 교도소에서 가격 뿐 아니라 재소자의 영양도 고려하여 콩밥을 식사로 제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인간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감옥에서 그렇게 휴머니즘이 넘쳐났을 리 없다. 콩밥이 얼마나 형편없는 식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 있다. 1936년 4월 25일자 <조선중앙일보>에 실려 있는 콩밥이라는 제목의 동시다. 표현방법이 상당히 낯설고 거칠지만, 어쨌든 콩밥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아이들의 심정과 1930년대 일제 강점 당시, 일반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콩밥을 보면 넌더리가 나요. 밤낮 우리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콩밥만 지어요. ‘엄마, 나 콩밥 먹기 싫어, 쌀밥 지어, 응?’하고 졸랐더니 엄마는 ‘없는 집 자식이 쌀밥이 뭐냐. 어서 못 먹겠니?’하고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셨어요. 나는 꿈쩍도 못하고 안 넘어가는 콩밥을 억지로 넘겼지요. 해마다 쌀농사는 짓는데 밤낮 왜 우리는 콩밥만 먹을까요?”

 

1924년 5월 11일자 <시대일보> 기사에도 콩밥 이야기가 실려 있다. 평양형무소에서 배급량을 줄이는 바람에 일하던 죄수들이 배를 곯아 졸도했다는 기사로, 콩을 섞는 대신에 좁쌀로 지은 조밥을 제공했더니 기절을 할 정도로 그 양이 적어졌다는 내용이다. 감옥에서 왜 콩밥을 제공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무렵 일제는 한반도의 쌀을 수탈해 가는 대신에 만주에서 콩과 조를 들여와 공급했다. 바꿔 말하자면 밥의 양을 늘리는데 값싸고 양 많기로 콩을 대신할 작물이 없었던 것이다. 콩밥 먹는다는 표현 하나에도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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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파원 활동·출장·연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머물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결과,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음식잡학사전』·『신의 선물 밥』·『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