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우산을 쓰면 몰매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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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현배 역사칼럼리스트

 

우산을 쓰면 몰매를 맞는다?

 


우산은 본래 햇볕을 가리는 데 쓰는 양산에서 비롯되었다. 우산이라는 뜻의 단어 ‘엄브렐러’가 그늘을 의미하는 라틴어 ‘움브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전 세계를 아우른 우산의 역사

최초의 우산은 오늘날 이라크에 속하는 아카드에서 BC 2334~2279년경인 사르곤 왕 때에 발명되었다. 그의 승전비에는 전쟁터로 나가는 왕의 머리 위에 시종이 커다란 우산을 씌워 주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때의 우산은 햇볕이 뜨거운 고대 중동에서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고귀한 왕의 몸을 보호해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고대 아시리아나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6세기경 우산이 발명되었다. 놀랍게도 오늘날의 우산처럼 접고 펼 수 있는 금속제 양산이었다. 게다가 양산의 기능을 넘어 진짜 비를 막기 위해 기름 먹인 종이에 대나무 살을 대어 만든 우산도 있었다.  유럽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이 처음 사용된 것은 18세기경부터였다. 영국의 이름난 여행가 조나스 한웨이가 페르시아에 갔다가 중국에서 전래된 우산을 처음 본 것이다. 그는 이 우산을 영국으로 가져와 우산을 쓴 채 런던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자 우산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조나스 한웨이를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해가 뜨나 비가 오나 꼭 우산을 쓰고 다녔다. 마부들은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꼭 마차를 부르는데, 우산이 널리 보급되면 자신들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조나스 한웨이를 길에서 발견하면 일부러 그에게 접근해 흙탕물을 튀겼다고 한다. 이후로도 그는 30년 동안 꿋꿋하게 쓰고 다녔고 그제야 사람들은 우산을 사는 것이 마차를 부르는 것보다 더 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19세기 중엽에 와서 신사가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이 크게 유행할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박쥐 모양의 우산을 만든 것도 조나스 한웨이다. 영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한웨이즈’라 불렀다.

 

우산 때문에 매질을 당해야 했던 선교사들

우리나라 개화기 때 있었던 일이다. 오랫동안 가물다가 비가 내린 어느 날이었다. 장대같이 굵은 비는 마른 땅을 적셔주고 있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국인 선교사는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던 중 그는 파랗게 질려 걸음을 멈추었다. 험상궂은 표정의 남자가 자기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내 선교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벼락처럼 고함을 질렀다. 고함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선교사가 쓴 우산을 보더니 이내 노기 띤 얼굴로 저마다 한마디씩 덧붙였다.

 

“당신이 사람이야? 하늘이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오랜만에 귀한 비를 내려주시는데, 하늘이 주는 복을 가리고 있어? 당신 같은 인간은 혼 좀 나야 해!”
“하늘이 주는 복을 일부러 가려?”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천벌을 받고 싶어?”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너무하잖아.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어이쿠! 왜들 이러십니까? 때, 때리지 말고 말로 하세요.”

 

선교사는 서투른 조선말로 떠듬떠듬 말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썼다는 죄로 몰매를 맞은 것이다. 이튿날 이 일은 <독립신문>에 실렸다.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났고 자주 기사로 실렸다. 그 뒤부터 선교사들은 한동안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가뭄 끝에 하늘에서 내린 비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 비를 우산으로 막는 것은 하늘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내려주는 복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 왔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비를 몽땅 맞은 것도 아니었다. 도롱이를 입거나 삿갓을 써서 최소한으로 비를 피하며 농사일을 이어갔다.

 

우산의 대중화에 앞장 선 여학생들

한편 우리나라에서 우산이 대중화된 것은 여학생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여성들은 외출할 때 쓰개치마를 머리에 썼다. 그런데 1911년 배화학당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 많은 여학생들이 얼굴을 드러낸 채 다닐 수 없다며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에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에게 검정 우산을 나누어 주어, 얼굴을 가리고 다닐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때 부터 우산은 여학생들은 물론 부녀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얼굴을 가리는 역할에다가 비가 올 때는 우산으로, 햇볕이 따사로울 때는 양산의 역할까지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산 하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2017년 광복절 아침에 문재인 대통령이 백범 김구의 묘역을 찾았다. 그날 비가 내렸으나 대통령은 우산을 쓰지 않고 헌화와 참배를 진행했다. 그 이유는 독립지사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현직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 전에 임시정부 요인을 참배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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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스 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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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의 우산 쓴 모습

 

 


신현배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역사칼럼리스트. 저서로는 역사 이야기 『엉뚱 별난 한국사』, 『엉뚱 별난 세계사』, 『2000년 서울 이야기』,

『세계사로 배우는 법 이야기』,  전통문화 이야기 『소중한 우리 문화 지식 여행』 시리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