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독립운동가
3·1운동에 온몸을 다 바친
황해도 송화군 독립운동가, 여화섭
글 자료발굴TF팀 그림 최승춘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 소식은 황해도 송화군에도 전해졌다. 황해도 송화군의 천도교인들은 이 기세를 이어 3월 12일 만세의 함성을 올리기 시작했다.

글 자료발굴TF팀 그림 최승춘

이날 아침부터 근처의 천도교인들이 읍내로 모였고 오전 10시경에 장병국, 손응규, 조종목, 여화섭 등이 태극기를 앞세워 헌병대와 마주하니 순식간에 2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시민들이 호응하여 읍내에 만세소리가 진동하였다.

글 자료발굴TF팀 그림 최승춘

만세의 대열은 시가지를 돌고 다시 헌병대 앞으로 모이니 처음보다 배나 증가되었다. 헌병들은 무기로 위협하며 해산을 강요하였지만, 시위 참여자들은 듣지 않고 더욱 기세를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불렀다.

글 자료발굴TF팀 그림 최승춘

헌병이 시위 참여자들을 향하여 총격을 가하자 앞에 섰던 몇 사람이 쓰러졌다. 시위 참여자들은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대항하였으나 적의 무기를 당해 낼 수 없었다. 5여 명이 중경상을 입고 17여 명이 구속되었다. 헌병보조원의 피해는 부상자 2명이었다.

글 자료발굴TF팀 그림 최승춘

헌병대에서는 시위 참여자 중 검거된 사람들을 혹독한 고문으로 심문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게 붙잡힌 여화섭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고자 불굴의 의지를 드러내었다.

글 자료발굴TF팀 그림 최승춘

여화섭은 징역 2년의 판결을 받았으며 정부는 황해도 송화지역 3·1운동을 위해 헌신한 여화섭의 공로를 인정하여 2024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기념관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자, 2018년부터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국가보훈부에 유공자로 포상 추천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 소식지에서 독립기념관이 발굴한 무명의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카툰으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