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특집
새로운 시작, 희망의 씨앗
봄의 독립운동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은 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국가보훈부는 이를 기념해 ‘2025년 이달의 독립운동’ 12건을 선정하였다.
봄의 따스함 속에서 피어난 독립의 열망을 표현하며 희망과 용기를 기리는
3월부터 5월까지의 독립 운동과 상징물을 알아보고, 선열들의 독립운동사를 기억해 보자.
3·1만세도 (독립기념관 전시)

3월 - 3·1운동

1919년, 3·1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으로,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국제 정세가 변화하면서 독립운동은 전환기를 맞이했다. 국권을 침탈당한지 3,107일, 8년 6개월 만인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명의의 독립선언서가 선포되어 한국민들은 자주독립을 주창하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高唱)하는 3·1 운동을 시작했다.

1919년 이전까지 민족독립운동이 지역·개인·집단·단체별로 추진되었던 반면, 3·1운동은 전국적, 전 국민적, 전 민족적인 독립운동이었다. 3·1운동은 민족운동의 용광로였으며 한편으로는 향후 다양한 형태로 민족독립운동이 발산되는 기폭제였다. 우리가 ‘한국 민족으로서 당연한 국민의 의무’로 ‘나라를 사랑하는 자의 도리로 좌시할 수 없어 독립 만세를 외친’ 것이 3·1운동이었다. 이는 ‘민족의 염원’으로 ‘우리의 자유와 독립과 국권을 옛 상태’대로 되찾아 ‘인도와 정의 그리고 생존 존영을 위해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함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 신년축하식(1921.1.1.)

4월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3·1운동의 결과 최초로 공화정체를 근간에 두고 각 임시정부를 통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수립 됐다. 같은 해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프랑스조계에 마련된 독립임시사무소에 29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나라의 이름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1차 임시 의정원 회의를 시작하였다. 나라 이름으로는 ‘조선공화국’ 이나 ‘고려공화국’ 등의 후보가 거론되었는데,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된 이름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인「대한민국임시헌장(大韓民國臨時憲章)」이 제정되었다. 이때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광복 후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으며 이 사실은「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임시정부의 헌법은 총 다섯 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영토와 삼권분립의 내용이 추가되는 등 근대적인헌법의 형식을 갖추어갔다. 또한 이 헌법 체계는 광복 후 1948년의 제헌헌법으로 대부분 이어져 현재 대한민국 헌법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근우회 발회식(1927.6.17.)

5월 - 근우회 창립

1927년 5월에 설립된 근우회는 신간회 자매단체로 민족계와 종교계, 사회주의계의 여성을 통합하여 ‘한국 여성의 단결, 지위향상 및 항일운동’을 위해 조직된 단체다. 신간회와 같이 반제, 반봉건운동을 내걸고 그 강령을 “첫째, 조선여자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키 위하여 공고한 단결과 의식적 훈련을 기하며, 둘째, 조선여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전적 이익의 옹호를 기한다”고 하였다. 행동강령으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일제 차별 철폐, 일체 봉건적 인습과 미신타파, 인신매매 및 공창의 폐지, 농민부인의 경제적 옹호, 부인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 및 산전 산후 임금 지불 등을 주창하였다.

1930년까지 전국으로 60여 개 지회를 설립한 근우회는 일제의 탄압에도 각종 강연회나 토론회를 통해 여성계몽활동, 광주학생운동 등의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뚜렷한 목적 아래 통일적으로 운동을 추진하였으나, 1931년 일제의 직·간접적인 탄압으로 중앙 근우회가 해체되었다.

희망의 계절,
봄날의 독립운동 상징물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 *국가지정기록물(독립기념관 소장)

3·1운동 -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조선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발표한 독립선언서이다.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인쇄된 것으로 본문, 공약 3장, 조선민족대표 33인 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언서는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라고 시작한다. 공약 3장의 내용을 통해 3·1운동이 비폭력적 독립운동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임시의정원 태극기 *국가등록문화유산(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 임시의정원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김붕준 일가가 제작·보관하였던 태극기이다. 가로 189cm, 세로 142cm 크기의 대형으로, 두 폭을 이어 붙인 백색 바탕 천에 홍색과 청색 천으로 태극 문양을, 흑색 천으로 4괘를 오려 붙여 박음질해 제작했다. 깃대에 매달 수 있도록 매듭 술이 달린 끈이 아래위로 달려 있고, 뒷면에 있는 ‘東 洋旗占□’과 ‘市□路’라는 바랜 글씨로 보아 기 제작 전문업체에 맡겨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대형 태극기는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회의 및 행사에 게양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항일독립운동 당시 국가 표상으로써 뿐만 아니라 태극기의 변천사를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크다.

『근우』 1권 1호

근우회 창립 - 『근우』 1권 1호

일제강점기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에서 발행한 잡지로 1929년 5월 10일에 발행된 창간호이다. 편집 및 발행인은 정칠성, 인쇄인은 정경덕, 인쇄소는 창문사, 발행소는 근우회 본부였으며, A5 판형에 120여 면으로 정가 30전에 판매되었다.

『근우』는 현재 창간호만 남아있으며, 2호부터의 발간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근우회는 『근우』 창간호에 근우회 강령과 근우회 선언문을 싣고, 여성이 처한 사회적 문제를 한국의 전통적 가부장제와 식민체제에서 오는 여성의 성적, 계급적 모순이라 보고 여성의 단결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여성의 의식개혁과 계몽을 목표로 논설, 평론, 각종 상식, 소설 등의 문학작품, 회원들의 투고, 광고 등을 실었다.

광복 80주년 특집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교육정보서비스 등에서 발췌한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