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이 삐떼르 신부의 일기
1919년 3·1운동 때 최종심인 3심 고등법원에까지 상고하며 법정투쟁을 계속 한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의 상고 이유서에 이런 문구가 많다.
“4천 년 문화민족으로서 어떻게 일본의 노예로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독립만세를 불렀는데 그것이 왜 죄가 되느냐!”
전 민족적인 3·1 독립만세시위운동에는 이와 같은 오랜 역사와 문화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이 바탕에 있었다. 헝가리 신부(Bishop) 버이 삐떼르(Count Vay P ter, 1863-1948)는 대한제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던 시기인 1902년, 1907년과 1912년 망국 직후에 한국을 방문하여 그 불운의 역사를 보며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현재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강요하는 것들은 한국인의 자존심이 전면에 등장하게끔 유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침략자들보다 우수하다.” “한국은 다시 주권을 찾을 것이다.” “세상의 무대는 대서양이 아니라 태평양 연안 지역으로 옮겨질 것이며, 그때는... 한국과 한국민이 미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믿어 의심치 않는다.”
중진국 함정을 탈출한 13개국(세계은행). 이 중 식민지를 겪고 현대적 제조업과 수천만 국민의 중형 국가는 대한민국, 대만이 예외적이다.
버이 삐떼르 신부의 기록 이후 100여 년이 지났다. 2025년 올해는 광복 80주년의 해이다. 지난 80년은 우리 민족에게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어떤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작년에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서가 그 인증서이다.
세계은행이 2024년 8월 1일, ‘2024년도 세계개발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를 발표했다. 세계은행은 1978년 이래 매년 경제 개발 및 협력과 관련된 주제를 선정하여 발표해 오고 있다. 세계은행은 이 보고서에서 지난 50년간 많은 개발도상국이 중진국에 진입한 후 고소득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되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지난 50년 동안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한 거의 유일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것이 대한민국이라고 하였다.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국민이 광복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자유체제를 갖추었을 때 80년 만에 국가발전의 세계사적 모델이 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반세기에 걸친 항일 투쟁기에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사회 특권층의 자기희생 사례가 의외로 드물었다는 점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당 이회영 집안 6형제가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한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망국 당시의 이완용 등 많은 고관대작들은 일제에 협력하여 나라를 넘기고 작위(爵位)와 은사금(恩賜金)을 받아 호의호식했다.
3·1운동 때도 고관대작을 지낸 분들은 앞에 나서기를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당시 신흥종교였던 천도교, 기독교와 차별받고 있었던 불교 일부 지도자들이 민족 대표로 무게를 짊어졌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지도층 일부는 병역 면탈, 탈세, 불법, 전입 등의 문제로 국민들에게 아쉬운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우리 사회 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 이기도 하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이제는 우리 사회 지도층이 더욱 책임감을 갖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일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비고가 그린 1904-5년경의 극동 정세 카툰(보스턴 미술관 소장)
파고다공원의 3·1 독립만세시위 민족기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