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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비행학교,
윌로우스 한인비행사양성소

 

글 임종현 (헤리티지 스마트 컨설팅 그룹 대표)



1920년 2월 20일, 항일 독립전쟁을 위한 비행사 양성을 목적으로 윌로우스 한인비행사양성소 설립이 추진되었다.  

1910년 국권을 침탈한 뒤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전투비행사를 양성하고자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 항공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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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비행사양성소 교육생들 (1920)

설립 배경 및 목적 

1920년 2월 20일,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주 글렌 카운티의 수도인 윌로스(Willows)시에서 약 6마일(약 9.6 킬로미터) 떨어진 40에이커 규모(약 48,967평)의 부지에서 윌로우스 한인비행사양성소 설립이 추진되었다. 1916년 하와이로 망명해 독립군 양성을 주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1875~1926)의 지도력과 북미 캘리포니아주 한인 재력가 김종림·이재수·신광희 등의 적극적인 후원, 미주 한인들의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가 결합된 것이었다. 한인비행사양성소는 시대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경험하면서 공군력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과 함께, 국내적으로 1919년 3·1운동의 소식이 미주에 전해진 직후인 5월 ‘청년혈성단’이 조직되면서 시작되었다. 청년혈성단 발기인 23명 중 이용근·이용선·이초·장병훈·한장호 등 5명이 비행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인이 운영하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비행학교(Redwood Aviation School)에 입학했고, 졸업 후 한인비행사양성소에 교관으로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비행기대 편성’을 정부의 당면 방침으로 정하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원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요청하였다. 군단 창설의 임무를 위임받은 대한인국민회와 노백린 장군은 비행훈련을 지도할 교관을 초빙하고 비행학교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1920년 2월 5일에 레드우드 비행학교를 방문하였다. 당시 레드우드 비행학교에 재학 중인 오림하·이용선·이초·한장호·이용근·장병훈 등을 만나 비행학교 창설과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미주 한인 재력가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비행학교 설립을 추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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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총장 노백린 장군 (왼쪽에서 네번째)과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비행학교의 한인 연습생들

 

설립 과정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비행군단 결성과 비행사 양성 학교설립을 위한 재정 대부분은 당시 콜루사(Colusa)와 글렌(Glenn) 카운티 일대에서 쌀농사로 큰 부를 일군 재력가 김종림(Chong-lim kim, 1886~1973)이 담당했다. 김종림은 1913년에 도산 안창호가 주도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한 흥사단의 8도 대표 중 함경도 대표로 참여하였고, 공립협회로부터 대한인국민회·대한인동지회 북미총회에 이르기까지 재미 한인사회에서 구국운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콜루사 카운티 소재 프린스턴(Princeton)시 은행의 직원이자 동업자였던 포스터 포터(Foster M. Porter)가 샌프란시스코 출신 부동산 개발업자인 필립 크로스(Philip B. Cross)에게 임대한 1,520에이커 규모의 농지 중 일부인 40에이커의 땅을 비행 훈련장으로 확보하였다. 김종림은 비행학교의 운영과 유지를 위해 초기 투자금 2만 달러와 매월 3천 달러를 지원하였으며, 교육용 비행기 3대의 구매, 활주로 건설, 가솔린 탱크와 천막 설치 등 모든 경비 일체를 담당하였다. 비행 훈련장에 있던 시설 중 교사 건물은 글렌 카운티의 이탈리아-스위스계 이주 가정의 자녀들을 수용하기 위해 1914년에 신설된 퀸트 공립학교(Quint School)였으며, 1919년 이후 비어 있었던 것을 김종림과 아내인 앨리스 백(Alice Paik)의 노력으로 글렌 카운티 교육청 및 퀸트 지구 교육 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임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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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림과 윌로스 시 정착 시절 가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앨리스 백·김종림·장녀 코리아·장모)

한인비행사양성소의 기능과 활동

당초 공군 군단으로 출범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군력을 키우고자 설립되었지만, 비행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글렌 카운티 지역 내 백인사회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일자, ‘한인비행학교(Korean Aviation School)’라는 명칭을 내세웠다. 설립 직후인 1920년 2월 20일 미주에 거주하고 있던 24명의 재미 한국인 청년들이 교육생으로 지원했으며, 1920년 6월 무렵부터 연습용 비행기 2대를 마련하고(이후 1대가 추가됨) 당시 레드우드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던 헨리 브라이언트(Henry Bryant)를 교관으로 채용하면서 본격적인 비행훈련을 시작하였다. 1920년 7월 5일에 200여 명의 한인이 모인 가운데 ‘대한인비행가양성소’ 라는 이름으로 성대한 개교식을 개최하였으며, 개교식 다음 날인 7월 6일부터 지원자 중 15명의 교육생이 비행술 연습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던 우병옥·오림하·이용식·이초 등 4명은 7월 7일 졸업생이 되자마자 비행사양성소의 훈련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김종림·이재수·신광희 등 북미 캘리포니아 한인들은 개교한 비행학교의 조직적인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7월 25일에 존립 기한을 2년으로 하는 ‘비행가양성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학교 운영비의 대부분은 회사의 총재로 추대된 김종림의 도움을 받았고, 사원으로 참여한 이들이 월례금 10달러씩을 기부하였다. 교육생들에게는 150달러의 학비가 부과되었으나 대부분은 김종림의 농장에서 직접 노동하며 받은 임금으로 학비를 충당하였다. 한인비행사양성소가 운영된 1년 남짓한 기간 중 총 19명의 학생이 비행교육을 받았으며, 글렌 카운티 지역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샌프란시스코 연합영상 뉴스 회사(Associated Screen News Co.)가 제작하는 시사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1920년 11월 초부터 12월까지 글렌 카운티 일대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수확을 앞둔 대부분의 벼가 물에 잠기면서, 김종림을 비롯한 글렌 카운티 지역의 한인 농장 대부분이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에 따라 비행학교의 운영도 어렵게 되었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서는 비행학교에 대한 지원을 최대한 협조하기로 결의하는 등 학교를 유지하고자 다방면의 노력을 하였으나 경제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1921년 4월 중순 이후 문을 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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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비행사양성소(옛 퀸트 교사) 건물과 부대시설(좌), 한인비행사양성소 비행장과 활주로(우)

의의 및 평가 

한인비행사양성소는 1910년 국권을 침탈한 뒤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전투비행사를 양성하고자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 항공전략이었다. 더불어 낯선 미국 땅에 정착한 한인 이민자들의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이 만나 실현되었던 역동적인 항일 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국외 사적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1903년에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고정익 항공기를 활용한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지 불과 17년 후에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임시정부와 재미 한인 독립운동가들의 선구자적 혜안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유산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1년 7월 18일 자로 한인비행사양성소의 생도였던 박희성과 이용근을 육군비행병 참위(소위)로 임관시켰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로 평가할 수 있다. 소재국인 미국에서도 이민사·농업사·항공사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한인 역사 유물 중 유일하게 ‘국가역사기념물’로 등재될 가능성이 있는 잠정자산으로 분류되었고, 캘리포니아주의 아시아계 미국인 관련 유산에도 ‘중요 한인 유산’으로 언급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한인비행사양성소 관련 유적은 임차해 사용한 퀸트 교사(校舍)가 유일하며, 이 건물은 1924년 무렵 글렌 카운티 874번 필지로 옮겨 일부를 개조한 후 이탈리아 이민자인 베나마티 가(家)의 살림집으로 사용되다가, 외관의 일부를 보수하여 현재 창고로 전용 중이다. 한미 양국에 걸친 윌로우스 한인비행사양성소의 다면적 가치와 역사적·문화적 상징성을 고려할 때, 정부 간 긴밀한 상호 협력을 통해 현실적인 보존과 관리 방안이 시급히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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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비행사양성소 설립지 (현 글렌 카운티 1043번 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