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어린이의 영원한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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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학예실


어린이의 영원한 벗
방정환(方定煥, 1899. 11. 9~1931. 7. 23)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광복회와 공동으로 방정환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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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많은 문화 청년

방정환은 1899년 서울의 야주개(현 당주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천도교의 핵심인물인 권병덕과 왕래를 자주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는 10대 시절에 권병덕이 주관하는 일종의 토론모임인 소년입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총대장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1913년 선린상고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후 토지조사국의 말단으로 취직하였다. 그러던 1917년 천도교주인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결혼하였고, 이후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년운동단체인 경성청년구락부를 조직하여 잡지 『신청년』을 창간한 방정환은 직접 연극대본을 써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으며 최초의 영화잡지 『녹성』 발간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문화예술 활동을 벌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조선독립신문>을 비밀리에 출판하여 배부하였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일경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일본 유학을 떠나 도요대학(東洋大學)에서 철학 및 예술을 공부하는 한편, 동시에 천도교 잡지 『개벽』의 도쿄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의 설립을 추진하는 등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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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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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개벽』 폐간 항의 모습(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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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녹성』 창간호

(한국방정환재단 제공)


어린이운동의 선구자

1920년대 방정환은 어린이문화단체인 색동회 창립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어린이운동에 뛰어들었다. 도쿄에 유학 중인 방정환을 비롯해 정순철, 손진태 등 8인이 모여 색동회를 조직하였으며, 천도교소년회 창립일인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였다. 또한 1923년에 창간한 아동잡지 『어린이』는 방정환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편집과 발행을 담당하여 어린이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25년 신년호의 경우, 발간 일주일 만에 매진되어 3판까지 발행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방정환은 소파(小波), 몽중인(夢中人), 북극성 등 다양한 필명으로 『어린이』에 기고하였다.

 방정환은 타계 직전까지 동화 집필과 구연에 몰두하다가, 1931년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쓰러져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 서울시 망우리공원에 그의 묘소가 있다. 정부는 방정환의 공적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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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회 창립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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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회 마크가 그려진 어린이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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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 실린 방정환의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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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캐리커처(1920년대, 한국방정환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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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묘비(서울 망우리공원)